Fan et al. (2023)
우울, 이 축축한 현상의 원인은 대개 알아차리기 어렵거나, 혹은 너무 많다. 그중에서 사회적 지위의 몰락에서 오는 우울도 있다. 굳이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삶에서 사회적 지위란 것은 언제나 풍전등화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적응의 산물로 본다. 사회적 경쟁 가설(social competition hypothesis)에 따르면, 사회적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 증세는 순종적인 행동을 강화하고, 이로써 사회적 갈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의 감소’라는 ‘이득’을 얻는다. 다른 한편, 이 현상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분석이 새로 나왔다. 하일란 후(Hailan Hu) 연구팀의 젱샤오 판(Zhengxiao Fan)이 생쥐 행동 실험 모델을 만들어 수행한 연구로, 2월 《Cell》에 발표되었다.
생물학 실험실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쥐들을 홀로 두지 않는다. 생쥐도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 케이지에 3~5씩 두고 키우는데, 그들 사이에도 서열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 질서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들은 튜브 실험(tube test)을 했다. 생쥐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가느다란 원통 모양의 튜브 양쪽 끝에 생쥐가 한 마리씩 마주 보게 놓인다. 생쥐들은 서로를 향해 전진하다가 마주치게 되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어느 한 마리가 뒷걸음질 치며 튜브를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게 승자와 패자가 결정 난다. 이 실험으로 매긴 서열은 보통 잘 바뀌지 않는다.
Tube test on YouTube:
튜브 실험으로 알게 된 서열 1위 생쥐의 사회적 지위 박탈 모델을 만들기 위해 저자들은 ‘강제된 패배(forced loss)’ 패러다임을 고안했다. 튜브의 한쪽 출입구를 막아 서열이 낮은 생쥐가 뒷걸음질로 튜브를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튜브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일등 생쥐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등 생쥐는 예상치 못한 패배를 강제당하게 된다. 이것을 하루에 열 번씩 나흘 동안 반복하게 되면 생쥐들의 서열은 뒤바뀐다. 더 이상 튜브의 끝을 막지 않아도, 원래 일등이었던 생쥐는 다른 쥐들에 밀려 뒷걸음질로 튜브를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강제된 패배’를 맛본 직후 15분 동안 관찰해 보니, 일등에서 꼴등으로 추락한 생쥐의 홀로 있는 시간(staying alone)과 다른 생쥐에게 쫓기는 시간(being chased)이 증가했다고 한다(일종의 복수인 것일까?).
이 결과가 생쥐들 사이의 사회적 지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튜브를 빨리 빠져나오는 요령을 학습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자들은 아랫목 실험(warm spot test)도 해보았다. 이 실험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닥에서 진행되는데, 한쪽 구석에 생쥐 한 마리가 겨우 올라설 수 있는 따뜻한 지점, ‘아랫목’이 있다. 생쥐들을 이 챔버에 넣고 20분 동안 관찰한 뒤, 각 생쥐가 아랫목을 점유했던 시간을 계산하여 그들의 서열을 매길 수 있다. 저자들은 튜브 실험에서 강제된 패배를 당한 생쥐는 이 아랫목 실험에서도 서열이 하락했다고 보고하며, 전반적인 사회적 지위 하락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이 생쥐들에게서 우울증이 나타날까? 사실 인간의 우울증과 똑같은 현상을 생쥐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우울 증세와 유사한 행동(depression-like behavior)을 모델링하여 접근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행동 실험 패러다임이 개발되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강제 수영 실험(forced swimming test, FST)과 단물 선호 실험(sucrose, preference test, SPT)이 있다. FST에서 생쥐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작은 수조에 담긴다. 처음에 생쥐는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헤엄치는데, 곧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물에 떠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immobility). 이런 부동 상태가 언제 시작되는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가 행동학적 ‘체념’(behavioral despair)의 지표가 된다. SPT에서 생쥐는 보통 물과 수크로스(sucrose)가 녹아있는 단물을 공급받는다. 단물에 대한 선호가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무쾌감증(anhedonia)의 지표가 된다.
일등이었다가 강제된 패배를 겪은 생쥐는 여러 대조군 생쥐보다 FST에서 더 긴 부동 상태를 보였고, SPT에서 단물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했다. 우울 관련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실험은 여러 대조군과 같이 진행되었는데, 주목할 만한 대조군은 정상적 패배(natural loss) 그룹과 비사회적이면서 물리적으로 강제된 패배(mechanical forced loss) 그룹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다른 케이지에서 온 서열 1위 생쥐와 붙어서 졌거나, 다른 생쥐가 아닌 막대기에 밀려 뒷걸음친 경우 우울 관련 행동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우울의 원인이 단순히 뒷걸음칠 치는 것이나 패배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대에게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겪은 경우에 우울 증상이 초래되는 것이다.
뒤따르는 실험에서 저자들은 시상(thalamus)의 외측 고삐핵(lateral habenula, LHb)이 이 현상을 매개하는 데 중요한 뇌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등 생쥐가 강제된 패배를 겪을 때 LHb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c-Fos 면역염색법, 포토미트리(photometry), 유닛 레코딩(in vivo single-unit recording) 등의 방법으로 관측했다. 강제된 패배를 겪는 동안 LHb 뉴런을 억제하면 서열이 하락하긴 했지만, 우울 관련 행동은 완화되었으며, 반대로 LHb 뉴런을 튜브 테스트를 하는 동안 자극하면 생쥐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행동을 보였다. 또한 저자들은 내측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도 이 현상에 관계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튜브 테스트 동안 mPFC를 자극하면 서열이 추락했던 생쥐가 다시 이기기 시작하고 우울 증세도 나아졌다. LHb는 mPFC로 직접적인 인풋을 보내지는 않기에 이 두 영역이 어떻게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후속 과제로 남겨졌다.
이 연구는 특정 유형의 심리적 문제, 그러니까 사회적 지위 하락으로 인한 우울 증세를 모델화하고 관련된 신경 회로와 그의 기능을 규명했다.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우울 증세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에게도 시도해 볼 만한 선택지와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한 가지는 이렇다. ‘강제된 패배’ 패러다임에서 저자들은 ‘패배’ 자체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패배’를 우울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강조했는데, 그럴듯한 또 다른 요인은 상대 생쥐에게서 오는 자극들이다. 논문에 첨부된 영상을 보면 서열이 낮았던 생쥐가 뒷걸음질 치다가 막혀있는 출구 때문에 허둥대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때 괴로워하면서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상대 생쥐에서 오는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 자극은 일등 생쥐에게 일종의 사회적 스트레스(social stress)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 자극들은 ‘강제된 패배’ 경험과 분리되어 실험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들이 우울 관련 행동을 야기했을 가능성은 이 연구에서 검증받지 못했다. 다양한 사회적 자극들이 생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요즘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고려되었다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다.
논문의 말미에 저자들은 서열과 우울에 대한 신경회로망 모델을 제시했다. 예상치 못한 패배가 LHb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mPFC에 영향을 미쳐 지속적인 튜브 테스트 패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다른 신경회로망 모델이 그런 것처럼 앞으로 계속 수정‧보완될 것이다. 당장 LHb의 광유전학적 억제 실험 결과는 이 모델에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강제된 패배 중 LHb 뉴런이 억제되면 기존 일등 생쥐의 서열이 하락하면서도 우울 증상은 개선되는데, 이는 mPFC 활성이나 사회적 지위 하락을 조절하는 다른 신경회로 인풋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현상에서 기억하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예상치 못한 패배’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대 생쥐에 대한 기억(social memory)과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던 승리 경험에 대한 기억(episodic memory)이 필요하다. 이런 기억들을 매개하는 신경세포와 신경회로가 ‘강제된 패배’를 겪는 동안 어떻게 변화하는지, 우울 관련 행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속 연구에서 밝혀지길 기대한다.
논문
Fan, Z., Chang, J., Liang, Y., Zhu, H., Zhang, C., Zheng, D., Wang, J., Xu, Y., Li, Q. J., & Hu, H. (2023). Neural mechanism underlying depressive-like state associated with social status loss. Cell, 186(3), 560–576.e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