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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그냥 즐기라는 무책임한 말

샘이 금방 갔던 사원의 설화를 이해했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이해는 했는데 설화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잘 기억이 안난다고 답했다. 본인도 그런 스토리에 엄청 빠져드는 편은 아니지만 재미있어하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설화는 현실성이 없어서 빠져들다가도 멈추게 된다. 그러다 원래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왜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예를들어, 이 설화에서도 갑자기 물이 생기면서 신화적인 장면이 탄생한거니까 목이 너무 마르고 물 없이 살기 힘든 시절에 누가 제발 나타나서 콸콸콸 물 좀 흘려주세요 라고 생각하며 만든거 아닐까. 그런식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건 말도 안되지만 있었으면..하는 희망을 가득 담아 제작하는게 아닐까? 그걸 열심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야기를 전파하는 모습, 삼삼오오 모여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 그런 장면들이 영화 필름처럼 이어져서 그저 귀엽고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우리의 이야기는 무르익어 오늘 쓰레기 더미를 보며 한 생각들을 샘에게 말해주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난 여기 처음에 왔을 때 온천수와 섞여있는 쓰레기더미가 더 충격적이였어.”

 - 왜 이렇게 깊게 생각해. 그냥 즐겨. 신기하잖아.

“나도 알아. 그냥 즐기고 싶어. 근데 안돼 그게. 내 눈에는 온천수가 작게 보이고 쓰레기 더미가 확대된것처럼 보인단 말야.”

  -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냥 즐겨.

“니가 그냥 즐기라고 하는 말, 나한테는 되게 무책임하게 들려. 나는 너랑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생각도 달라. 나는 거리가 깨끗한게 당연한 사람이야. 근데 여긴 아닌게 당연한거잖아. 그래서 연습중이야. 내가 산 곳에서 당연한게, 여기선 아니라고. 수없이 스스로 주문걸고 생각해. 아직 받아들이는 연습중이라고. 나한테는 그냥 즐길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이게. 아직 여기 여행한지 3주도 안 된 시점에 그냥 받아들이는건 어려운 일이라고. 왜?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생기는데 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물론 내가 바보같고 무례하다는 생각도 해. 내가 살아온 기준에서는 왜 이렇게 길거리에 쓰레기를 계속 버리는지. 그럼 도대체 누가 치우는지. 그러다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면 그땐 어떡할건지. 아님 이걸 누군가가 치운다해도 아무렇지않게 계속 버려대는 인도 사람들은 정말 안 변할건지. 이런 생각을 마구마구 하다 생각의 종점은 내가 건방지다는거야. 왜 이 사람들이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안 바뀌어도 되는거잖아. 내가 아예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와놓고서는 내 방식대로 바꾸려고 하고, 그게 안 될 것 처럼 보이니까 화나고 떼쓰는거잖아. 아무래도 내 욕심일텐데. 알면서도 이해가 안되니까 납득이 안 돼. 내 마음대로 안되는게 나도 답답해.”


자꾸만 즐기라고 말하는 샘이 원망스러워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그간 인도에 대해 혼자 꾹꾹 삼키고 있었던 속마음들을 꺼내버렸다. 한참을 말하고나서 미안했다. 아무래도 자기나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데 자국민으로서 기분 나쁘지 않을까. 터져버린 내 입방아 끝에 너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너무 흥미로워”

 - 응?

샘은 해외여행을 가 본 적 없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고 여행이나 트래킹은 좋아했지만 해외를 가 본 적은 없었다. 외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내가 보는 시각과 생각들은 그에게 새로운 것들이였다. 살면서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나와 다른 점은 다르다는걸 틀린게 아니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였다. 나는 계속 인도를 바라볼 때 다른점을 틀리다고 접근하니 이해가 안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끝나버린다. 샘은 나의 다른 시각을 틀린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와 생각도 못했던 시야인데. 재밌다. 언제든 니 생각 공유해줘. 그런 반응을 보인다. 샘의 반응을 보면서 내 종지만한 그릇을 다시한번 들여다봤다.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이 됐다. 이놈의 식습관은 환경이 변해도 바뀌질 않았다. 치킨이 계속 먹고싶었다. 인도에가면 문화에 맞춰 채식을 해야지. 다짐하고 왔는데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짐했을까? 인도 도착과 동시에 사라졌다. 인도 사람들이 다 채식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종교에 따라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쏨 한명만 채식을 선호했다. 그 정도로 나는 인도에 무지했다. 한번은 쏨이랑 밥을 먹는데 내가 궁금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나보다. 본인 음식도 먹어보라길래 내 숟가락으로 냅다 친구 그릇으로 달리는데 “헤이헤이” 하며 날 저지했다. 아 너무 공격스럽게 다가갔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작을 멈췄다. 쏨은 본인이 채식주의자라며 내 숟가락을 가리켰다. 아차차. 이거 진짜 생각도 못했다. 나는 고기가 들어간 수프를 먹었고, 쏨은 야채 수프를 먹었다. 나는 고기수프를 먹던 숟가락을 썼고, 쏨은 야채수프를 먹던 숟가락을 썼지. 결국 쏨은 본인의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주며 먹어보라했다. 한국에서 엄격한 채식을 선호하는 친구랑 밥 한끼 먹어본 적 없어서 전혀 몰랐다. 이토록 나는 엄청 무지했고, 지금은 무지 먹고싶은 치킨을 찾아 나섰다. 


한국식 치킨은 없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탄두리 치킨이 있었다. 비쌌다. 놀이공원에서 구슬 아이스크림 사먹는 기분이였다. 조그만한 5조각에 2,300원이니까 한국 닭꼬치랑 비교했을 때 크기는 훨씬 작고 가격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먹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니까 샘에게 하나 먹자했다. 주인장이 불판에 고기를 얹을 때 빅 사이즈 플리즈, 빅, 빅을 외쳐가며 잘 구워지길 기다렸다. 너무 다 타버려서 조그만한 조각이라도 버리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며 냄새를 맡다보니 어느새 내 입에 들어와있다. 우린 다섯조각을 열조각으로 나눠 오순도순 먹었다. 한번 맛 본 치킨은 내 입 안을 맴돌더니 자연스럽게 뇌로 번졌다. 아아, 나는 치킨에 지배당했다. 아, 탄두리여. 내일부터 일주일간 못 먹는다 해도 오늘은 먹어야겠다. 그래.


“샘! 우리 탄두리 치킨 먹으러 식당가자! 내가 아까 봤는데 저기에 있었어! 나 더 먹고싶어..”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가격부터 확인했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고 아까 너 한입, 나 한입 나눠먹은 순간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가게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샘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인장이랑 얘기를 나누더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가 끝났다. 내가 알아챌 수 있는 건 “티케 땡큐” 마무리 멘트와 주인장 손을 잡으며 공손하게 감사를 표현한 몸짓이었다. 주인장이 술 사와도 되는걸 허락했다며 럼을 사러가자했다. 샘에게는 습관이 있었다. 저녁 외식을 할 땐 럼을 사와 한잔이나 두잔을 마셨다. 물론 따듯한 물을 요청해서 럼과 섞어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술이라기 보다는 술맛이 느껴지는 차처럼 느껴졌다. 쓸데없이 술빨을 세우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스트레이트로 먹겠다. 술은 술이여야 한다. 열심히 지론을 펼치는 사이 샘은 건강을 위해서라며 따듯한 물을 몰래 부어버린다. 그럼 나는 다시 럼을 추가해서 농도를 진하게 만든다. 매 저녁 식탁은 달라져도 우리의 협상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늘도 협상 끝에 내 잔에는 물을 조금 태우고, 샘은 물을 많이 태워 따듯한 차처럼 마셨다. 치킨이 맛있게 구워지길 기다리며 정처없는 수다가 시작됐다. 


“샘, 여기는 대부분 식당에서 주류 반입을 허락해줘? 신기해.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주인이랑 얘기하고 술 사가고 그런게 됐는데, 언제부턴가 대부분 식당에서 웬만한 주류를 다 파니까 사갈 수 없게됐어. 굳이 사가면 똥매너 그런거야. 근데 여기는 술을 팔든 안 팔든 럼은 잘 안 팔아서 그런지 다 오케이 해주는 분위기네?”


샘은 주인장마다 다르다고 말해줬다. 아무래도 공손하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면 뭐든 통하나보다. 히마찰 사람이라 그런걸까. 사라한에 있을 때 히마찰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좋다고 들었는데. 럼을 홀짝이며 샘이 어떻게 고향을 떠났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10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랑 헤어진 일과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로 도착했다. 여자친구가 집에서 도망가고 싶다며 당장 다른 지역으로 가서 결혼해 살자며 무작정 샘을 찾아왔을 때 느꼈을 당혹스러움,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스럽게 지켜봐야하는 아픈 마음, 이른 나이에 다른 지역에서 일을 시작해 기댈 곳 없던 슬픔을 느꼈다. 아, 감정 에너지를 너무 많이썼나. 나는 자연스럽게 반마리를 더 시켰다. 과거에 머물렀던 이야기는 어느새 현재로 넘어가 지금 직장에서 겪는 희노애락을 들었다. 마지막 치킨이 나왔을 땐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은지 미래까지 도착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와 술과 맛있는 음식. 삼박자로 기분좋게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길, 뮤직바를 지나치면서 한잔 더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 기분에 취해 생각보다 많은 돈을 썼으니까 그만두기로 했다. 길에는 뮤직바를 홍보하는 화려한 페인트를 입은 돌이 보였다. 아주 끝장나게 신나볼까 싶다가도 오늘 충분히 행복했으니 이걸로 만족하자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키 큰 나무, 맑고 청량한 물소리, 반짝이는 별들, 오늘 겪었던 좋은 시간들. 그래. 이 행복한 기분을 충만히 즐기면서 빨리 자야지. 추위가 내 충만한 기분을 뚫고 들어올 수 없도록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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