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솔에서 75km 떨어진 마날리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는 럼 덕분인지 꽤나 잘잤다. 이동하는 날이니까 부산스럽게 요리 해먹거나 나가서 사먹을 생각하지 않고, 주인장에게 간단한 음식을 주문했다. 구글맵에서 검색했을 때 차로 가면 2시간 거리니까 버스타면 한 다섯시간은 걸리겠구나. 먼 거리로 이동하는게 아니라서 늦잠자고 아침도 든든하게 먹고 여유롭게 나왔다. 숙소 주인장과 친구들은 잔디에 패브릭 하나 깔아두고서 물담배와 과일 중 그 때마다 먹고싶은 걸 고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녕 히피들아 우리는 간다. 이동할 때 마다 더 커져버린 배낭을 이고지고서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샘이 결심한 듯 10분만 내어달라고 한다. 어제 나는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셋업을 하나 샀다. 친구들에게 줄 다이어리도 몇개 샀다. 내가 신나게 쇼핑하는 동안 샘은 손에 집을만한 것이 없었는지 들었다 놨다를 한참하다 내려놓았다. 떠나기 전, 샘은 자꾸 생각이 났나보다. 옷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라 그냥 갈리가 없다 생각했다. 게다가 이전에 까솔에 대해 얘기해줄 때 뻔하지않은 디자인의 옷들이 많아서 갈 때마다 꼭 산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그냥 떠날리가 있나.
배낭을 이고지고서 쇼핑을 시작했고 10분이 훌쩍넘었다.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괜찮은 것 하나씩 빠르게 추천해주고, 같은 상품이면 어디가 제일 싼지 알려주면서 빨리 쇼핑이 끝나길 바랐다. 배낭 무게에 짓눌려 지치고 또 지쳤을 때 샘은 드디어 바지를 골랐다. 겨우 탈출하고서 버스를 타러 갔는데 5초 차이로 버스가 떠났다. 한번 떠난 버스는 다시 안 돌아오는 법. 우린 가방을 내려놓고서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놓쳐도 옷이 생겨 기분 좋아보이는 샘을 보면서 나도 웃음이 났다. 가방을 두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양말소녀를 안 만나려나 두리번거렸다.
까솔에 지내는 동안 버스정류장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누가봐도 짝퉁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양말 3개가 들어있는 팩을 들고 있었다.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양말 필요하지 않냐고. 정말 싸게 줄건데 괜찮지 않냐고. 묻고 또 물었다. 샘이랑 소녀의 대화는 조금 달랐다. 시작하는 멘트는 같았는데 소녀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야기하다 웃기도하고, 샘은 소녀가 귀여웠는지 볼을 꼬집기도 했다. 대화 끝에 샘은 양말이 필요하다며 한 팩을 샀다. 소녀는 쿨하게 인사하고 금방 버스에서 내린 그룹들에게 다가갔다. 샘은 소녀에게 어디서 양말을 사오냐고 물었고, 소녀는 영업비밀을 아주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여기서부터 1시간정도 떨어진 큰 지역의 시장에 버스를 타고 가서 양말을 사고 다시 돌아와 여기에서 판다고 했다. 그 때 드는 버스비와 양말 도매가를 다 말해주고서 당당하게 본인이 사온 양말 가격의 1.5배로 팔았다. 이걸 다 팔면 또 가서 사오는 방식이라 했다. 순수하게 모든 금액을 공유해주는 소녀가 너무 귀여웠다. 미션을 완료하니 쿨하게 떠나는 것도 귀여웠다. 소녀는 뭘 해도 할 사람이라며 칭찬하는 사이 다른 소녀가 왔다. 미안한 표정으로 똑같은 양말팩을 흔들어보였더니 수줍어하며 갔다. 그러다 우리에게 양말을 판 소녀와 다른 친구랑 샘이랑 셋이서 한참 수다를 떨다 쿨하게 가버렸다. 그렇게 까솔에 도착한 날 양말 소녀를 만났고, 둘째날에 지나가면서 또 만나서 친구처럼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양말 소녀는 한 팩 더 살 생각 없냐고 물었고, 우리 짐이 너무 많다고 했더니 양말 별로 안 무겁다며 한번 더 잡는다. 장난으로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솔직히 너라면 두 팩 사? 안 사? 했더니 웃으면서 안 산다고 대답한다. 같이 웃다가 그녀는 알겠다며 웃으면서 쿨하게 갔다. 그녀는 정말 쿨하다. 인도에서는 끈질기게 구걸하고, 판매하려는 아이, 여성, 노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그녀의 태도는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영업이라서 마음이 편했다.
양말 소녀를 만나지 못한채 버스를 탔다. 역시나 정신없이 올라탔고, 이동시간은 한참 걸렸다. 양떼가 온 도로를 차지해 목동이 양을 애타게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말을 안 듣는 몇몇의 양들은 버스표와 돈을 관리하는 버스 안내원의 호각소리와 어이-어이- 소리에 더해져 길을 내어줬다. 어린 양들은 새끼 강아지마냥 목동에게 폭 안겨 이동했다. 얼마나 귀여운지 버스가 느리게 갈 때는 답답하다가도 양이나 염소떼를 만나면 그 불만은 금새 사라졌다. 인도 버스는 대부분 왼쪽은 산이요, 오른쪽은 절벽인 1차선 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버스가 만나면 각이 안나오는데도 서로 길을 터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에 점심시간이 걸리면 시간이 추가된다. 버스가 다시 떠나는 시간은 알 수 없다. 기사가 왕이다. 같은 식당에서 그를 따라 밥을 시키고, 그가 자리를 뜨면 우리도 입에 때려넣고 같이 일어나야한다. 그가 운전을 하다 조그만한 마트에 세우면 우리도 물이나 과자를 사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가 볼일을 보는동안 수많은 장사꾼들이 재빠르게 버스에 올라탄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팝콘부터 단백질 듬뿍 담긴 한입거리 간식(병아리콩, 오이, 토마토, 양파 샐러드에 레몬, 라임, 소금을 뿌려주는 음식), 작은 음료수와 과자까지 다양하게 있어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누가 인도 사람 느긋하대. 누가 인도 사람들 느리대. 기사가 타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판매에 열을 올리다 기사가 문을 쿵하고 닫는순간 빠르게 사라진다. 지나가다 택시 잡듯이 손을 흔들면 기사는 승객을 태운다. 아니 버스를 택시처럼 잡다니? 정류장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 어디에서나 손을 들고 올라탄다.
이런 신박한 탑승방식 때문에 버스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물론, 인도는 사람이 워낙 많고 넓은 나라라서 손 흔드는 승객을 쌩- 지나가고, 점심도 없이 직진하는 기사들도 만났다. 어떻게든 이동시간을 줄이고 싶어하는 나같은 여행객에게는 아주 귀한 유형이지만 만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여느때처럼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마날리에 다와가는지 패러글라이딩 광고 입간판, 큰 사격장, 어릴 때 즐겨놀았던 풍선 궁전같은 액티비티가 많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광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 역시 마날리는 자연 액티비티의 성지인가. 다왔구나 싶었는데도 한참을 쌩쌩 달려 도착했다. 어디에서나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고, 미로같은 숲이 많은 마날리. 드디어 내가 그곳에 가다니. 마날리- 마날리- 버스표를 끊었던 안내원이 마날리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