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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잠시나마 우리는 친구였을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들과 오가는 몇 마디로 그 도시를 평가하기도 하고, 더 머무를지 떠날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나는 장기 여행일수록 안정감이 그리운지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낯선곳에서 자꾸만 집을 찾아다닌다. 내가 편히 쉴 수 있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위협적이지 않고 욕심을 조금 더 부려 따듯한 느낌을 기대한다. 비빌언덕을 찾는 여정이랄까. 비빌언덕을 만드는 비중의 8할이 나와 마주친 현지인들과의 대화들이다. 비언어적이든 언어적이든 그 대화속에서 나도 모르게 결정하게 된다. 아, 더 머물러야지 혹은 떠나야지. 마날리는 자연과 감성이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잠시 친구처럼 여겨졌던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마날리에 도착했던 첫 날 따듯한 샤워와 피로를 씻어보내고 허기진 배를 붙잡고서 몰로드를 향해 갔다. 몰로드에 진입하기 전 한 구석에 펼쳐진 노점상을 만났다. 사이좋게 모두 다른걸 팔고 있었다. 세상 시크해보이던 엉클은 짜이와 간단한 빵을, 세상 열심히 손을 굴리던 다른 엉클은 알루 띠끼(감자전을 빈대떡처럼 튀긴 음식)를, 세상 누구보다 영업에 열을 올리던 또또 다른 엉클은 닭튀김과 생선튀김을, 여유롭게 팬에 버터를 바르던 *안띠는 햄버거를 내놓았다. 아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세상이다. 조금씩 다양하게 먹고싶은 나에게 천국같은 곳이다. 짜이는 내일 아침에 공복에 먹으리라 다짐하고서 알루띠끼와 햄버거와 갓 튀겨주는 닭튀김을 각각 주문했다. 주문하면 음식별로 찾으러 가느라 바쁜 푸드코트처럼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분주해졌다. 여기저기서 음식이 다 되었다는 소리를 외쳤고, 햄버거 집 앞 의자에서 모든 음식을 먹어댔다. 탄수화물은 또 다른 탄수화물을 부른다고. 분명히 배는 부른 것 같은데 혀에 감도는 이 맛을, 아니 그 행복을 또 느끼고 싶었다. 그 중에 가장 맛있었던 띠끼를 하나 더 주문해먹었다. 


다음 날, 그 맛을 잊지못해 점심부터 그 곳으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문 열린 곳은 짜이집과 햄버거 집 뿐이였다. 우선 짜이를 마시면서 반대편에 펼쳐진 히말라야 산을 눈에 담고서 배고픔을 슬슬 가동했다. 햄버거 집에 가자 안띠는 우리를 기억하는지 어제 먹었던 거 또 먹을거냐고 물었다. 어제 얼마나 맛있게 먹었으면 다시 올거라는걸 예상했을까. 안띠는 어제처럼 여유롭게 팬에 버터를 가득 얹어 기름칠을 했다. 우리를 한번 보며 미소를 지었다가 팬이 달궈지는걸 쳐다봤다. 또 한번 우리를 보았다가 달궈진 팬에 빵을 올렸다. 다음에 우리를 쳐다볼 땐 웃으며 말을 건넸다. 물론 나는 힌디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샘과 안띠가 오가는 대화에는 애정과 웃음이 가득했다. 안띠는 우리가 어여쁜 여행자 같다며 반짝이는 청춘처럼 바라봐줬다. 그녀의 흐뭇한 미소와 빛나는 눈빛은 날 따듯하게 만들었다.

숙소에서 10분정도 걸어내려가면 큰 나무들 속에 위치한 목조형태의 하딤바 사원이 있다. 사원의 반대편에는 많은 노점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두가 같은 걸 팔고, 판매하는 사람만 다르다. 맛은 다 비슷할 것 같아서 그 중에 열심히 영업하는 소년의 가게에 앉았다. 인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띠끼, 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부터 한끼 뚝딱할 수 있는 라즈마 달 , 그 외에도 남인도식 음식인 도사나 여러 음식을 팔았다. 소년은 쑥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레스토랑 지배인처럼 맛이 괜찮냐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배고팠던 우리는 이것저것 시켜 배가 터지도록 먹고나서야 자리를 떴다. 여느때처럼 숙소에서 느즈막하게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빨래를 하고나면 허기진 배를 이끌고 나간다. 2km정도 떨어져있는 몰로드까지 가는데 택시비를 쓰는게 아까워서 운동삼아 걸어다녔다. 너무 배가고플 때는 몰로드까지 가지 못하고 소년이 일하는 가게로 갔다. 빠르게 배를 채우고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탄수화물로 가득찬 음식들을 시켰다. 


우리는 그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패스트푸드 위주로 파는 노점상에는 먹을만한게 없었다. 종류는 많았지만 음식 맛이 다 그저 그랬으므로 실패하지 않는 튀김위주의 식사가 늘 이어졌다. 몰로드까지 걸어갈 수 없던 날 낮에 그곳을 찾기도 하고, 낮에 몰로드까지 걸어갔던 날에는 어두운 저녁이 되었을 때 어슬렁 어슬렁 그 곳을 갔다. 숙소가 사원 거리에서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고, 휴식을 취하기에는 최고였지만 무언가가 필요할 땐 최악의 위치이기도 했다. 몰로드나 올드 마날리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조금 쉬다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진다. 애써 배고픔을 참아가며 뜨개질이나 영상 편집을 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8시가 다 되어간다. 밤이 찾아왔으니 복작거리는 몰로드를 가고 싶지 않다. 굳이 다른 옵션인 올드 마날리까지 가서 먹고 싶지않다. 하지만 주변에 식당이 없다. 그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소년의 포장마차로 간다. 여느때처럼 짠나 띠끼, 촐레 띠끼를 먹거나 어느날엔 라즈마 달을 먹어보기도 한다. 이 밤에 갈 곳 없는 우리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생각보다 들락거리는 횟수가 많아지니 소년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 샘은 14살정도 된 소년에게 큰 형이 되어있다. 포장마차가 있는 길거리만 지나가도 소년은 반갑게 인사해준다. 그러다 그 소년은 우리에게 식당 이상의 역할을 해줬다. 몰로드나 올드 마날리 식당에 가도 매번 먹는건 치킨 커리였고, 이 포장마차에서 먹는건 패스트푸드였다. 똑같은 음식이 지겨웠던 우리는 그 친구에게 메뉴에 없는게 가능한지 물어봤다. 


단순 그 자체인 계란,양파,피망 정도가 들어간 볶음밥이라던지, 원하는 재료를 마구 섞은 오믈렛이라던지, 삶은 계란이라던지. 소년은 대부분 웃으면서 오케이를 외쳤다. 요리는 소년의 몫이 아닌 더 큰 형이나 엉클의 몫이였기에 호기롭게 오케이를 외쳤다가 다시 웃으며 어렵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특히 밤에 찾아가는 소년의 포차로 가는길은 늘 즐거웠다. 모두가 로그아웃 한 마냥 차분한 밤이였고,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별이나 달빛이 우리의 길을 밝혀줬다. 배고픔을 채울 수 있다는 본능적인 욕망을 가지고 나와 나무만 숨쉬는 거리를 걷다보면 이 순간이 그리울거라는걸 그 때부터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선택권이 많은 낮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그 밤에 환하게 조명을 켜고 있는 포장마차와 소년의 미소가 참 고마웠던 나날이었다. 

 

소년의 포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의외인 위치에 남인도 음식점이 있는걸 발견했다. 갈색 벽돌이 쌓여진 담 위에 아주 예쁘게 남인도식 레스토랑이라는 글자와 그림이 적혀있었다. 다음날 낮에 지나가면서 고개를 돌려 유심히 봤다.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낮은 담 너머의 공간이 보였다. 적당히 정돈된 잔디밭에 테이블과 의자가 몇개 깔려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반대편에서 두 손 벌려 맞이하는 엄마가 보였다. 적당한 햇살, 테라스, 아름다운 장면, 이건 뭐 아무래도 대놓고 나한테 홍보영상을 켜준거나 다름없다. 맛을 떠나서 우리 집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해졌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이 곳이다. 근처 공원에서 과자를 먹으며 뜨개질을 한참 하다 피곤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어느새 밤이 되었고 여전히 출출해진 우리는 번뜩 떠오른 남인도 식당으로 갔다. 실내가 따로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명상 음악이 고요하게 흘러나왔다. 내부는 작은 테이블 3개정도 있는 아담한 공간이였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를 보자 첫 마디가 “웰컴!!”이였다. 어떤 식당에 들어가서 이렇게 환대를 받아본적이 있었나. 색다른 감정에 얼떨떨하면서 기분좋은 마음이 가득차있는데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가게 라스트오더가 7:30분인데 지금 7:29분이야. 행운아네!”


나는 정말 럭키라고 생각했다. 오늘 마음은 여기를 정했으므로 꼭 먹어보고 싶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메뉴를 둘러봤다. 나는 여태껏 먹어본 적 없는 남인도 음식이었고, 샘은 남인도 음식을 사랑하는 청년이라 샘에게 전적으로 메뉴 결정권을 넘겼다. 도사와 파니아람이라는 음식을 시켰다. 식당 주인은 주문 즉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 점에 양해를 구했다. 음식이 나올 때는 “드디어 황홀한 골드링 도사가 나왔다”는 표현을 했다. 그의 몸짓, 목소리, 말투에서 음식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이 있는지 그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할지 느껴졌다. 손님에게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자부심. 자만심이 아닌 자부심이였다. 말 한마디를 건넬때도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음식의 맛과 상관없이 이곳에 빠져버렸다. 예전에 우리나라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손님은 갑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갑을병정’무’인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손님의 정의가 무조건적으로 우위에 있는 위치이자 받들여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대접하고 싶은 먼 친구’의 개념에 가까웠다. 정중하게 대하지만 농담도 서로 쉽게 건네기도 하는 사이. 하지만 일부러 쉽게 서로에게 가까워지지 않는 사이랄까. 

 

왜 한국인들이 인도 여행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선이 뚜렷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민폐를 최대한 끼치지 않고 살려고 하고, 나의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가 안 되는 것 같다. 집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미드를 보면 그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파티문화로 집에 오만때만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즐긴다. 너 나랑 친해, 안 친해가 아니라 와서 즐겨. 아무나 그냥 와 일단 와서 즐겨. 인데, 우리는 초등학생 때 생일파티 초대할 때도 한참을 고민한다. 이 친구까지 초대해? 아 그만큼 안 친한 것 같은데? 아 그럼 민지랑 찬미랑 효원이는 하고,, 아 얘네들은 어떡하지. 그러다 크면 결혼식장에 누굴 초대할건지 또 한번 고민을 하게되고. 집들이를 초대할 때도 나의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가까운 관계가 아닌 이상 공유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공간이다. ‘아무나’ 초대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으로 여긴다. 


친한 친구가 아닌 누군가가 나에게 지나치게 조언을 하거나, 나를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에 “선 넘네?”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는데, 나에게 너무 급하게 다가오는것에 대해서 꺼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관광지 위주로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사기꾼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사기꾼의 수법은 무턱대고 나에게 직진하는 방식이다. 나는 아직 대답할 준비가 안 되었는데 무작정 질문을 막 던져대니까 당황스럽고 피곤해지는 것 같다. 나의 스케줄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고, 내가 인도 여행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너무나도 쉽게 질문해버린다. 절정은 초대하지 않았는데 내 여행에 합류해버린다.

 

“안녕. 너 인도 처음왔어?”

“오. 너 여긴 가봤어? 어땠어?”

“너 이건 먹어봤어? 그럼 이거는? 이제 뭐할거야?”

“내가 여기 데려다줄게. 여기 진짜 최고야. 인도여행하면 꼭 해야돼. 지금 바로 갈래?”


가만 생각해보면 장사를 하거나 사기꾼인 사람들 외에는 나에게 그렇게 직진하지도 않는다. 나는 유독 관광지가 아닌 곳을 돌아다녀서인지 무턱대고 직진하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수줍어서 말 건네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러면서 하나씩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지는 관계가 더 많았다. 하지만 관광지일수록 직진하는 현지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 모습이 강렬한 우리는 인도 사람은 이렇다. 라는 명제를 남기게 되는게 아닐까. 나도 그런 명제에 조금 물들어있다가 식당 주인의 태도를 마주하게 되는건 새로운 즐거움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너른한 호스트의 태도였다. 에어비앤비에서 집 전체가 아닌 호스트랑 함께 공유하는 집을 쓸 때 너무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필요한 일이 있을 땐 언제나 도와주지만 그렇지 않을 땐 가족 구성원처럼 필요없는 말을 딱히 안 하기도 하고, 편하게 농담을 건넬 때도 있는 그런 태도들 말이다. 그의 모든 말씨와 행동은 신박했다. 여태까지 만난 식당 주인들은 우리가 일하듯 그냥 일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소년이나 안띠처럼 순수한 감정을 공유해주는 사람들이었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모습을 만난건 처음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작은 공간을 본인 스타일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걸 알아챈 그 때부터 내 마음을 홀랑 앗아갔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을 앗아갈줄은 몰랐다. 숙소 주인장의 태도로 한번 더 앗아가고, 황홀한 골드링 도사를 먹었을 땐 ‘나 이제 다른 데 안갑니다.’를 선언했다. 소년의 포차에서 남인도 음식이 있어서 도사를 시도해봤는데 눅눅한 팬케이크에 으깬 감자가 들어간 느낌이라 맛이 없었다. 샘은 이건 남인도 음식이 아니라며 나 인도 사람이라 잘 안다고 소년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여기서 만난 도사는 다른 음식이었다. 맛있게 구워진 황금빛 색상에 얇고 크리스피한 과자를 바삭바삭 씹는 맛이었다. 바삭한 구간을 지나면 그 안에 잘 버무려진 맛있는 감자 속재료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조금 느끼해졌다 싶을 때 코코넛과 견과류를 갈아서 만든 소스에 찍어먹으면 모든게 리셋이었다. 고기를 먹다 마늘과 청양고추를 먹고 리셋하는 것처럼. 골드링의 황홀경에 빠져있을 때 빠니아람이 나왔다. 야채가 콕콕 박혀있는 담백한 볼 같았는데 계속 손이가는 맛이였다. 아, 나는 정말 여기 빠져버렸다. 그가 내뿜는 자부심은 과연 당연했다. 나는 영업시간을 물어봤다. 그는 영업시간을 말해주고서 매일 그날의 재료만 만드는 관계로 재료소진으로 조금 일찍 닫을 때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가서 맛있게 먹었다. 테라스에서 적당한 햇살과 함께 먹는 날도 있었고, 문을 닫아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문을 연 날에는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마날리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난건 행운이었다. 아마 그 행운으로 2주간 머물기로 결심했겠지. 그들은 몰랐겠지만 늘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언제나 환영해줘서 고마웠던 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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