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 오늘은 온천을 가자며 앞장섰다. 작년에 와 본 샘은 굵직한 사건들은 기억나지만 그 외에는 기억이 안 났는지 버스정류장 근처에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버스를 탔다. 20분정도를 달리니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 소리가 들리는 강이 흐르고, 그 위 육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육교에서 강으로 떨어지지 않게 철조망이 높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철조망에는 모다? 자물쇠가 여기저기 보였다. 센강이나 남산이나 까솔이나 지구인 생각은 다 비슷한가보다. 온천수가 뿜어져 나온다는 이 마을에 발을 딛을수록 내 마음은 심란해져갔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니 템플이 나왔다. 샘이 어떤 신이 집에오는 날 여기가 엄청 유명하다고 말해줬는데 늘 그렇듯 흘러들었다. 템플 안에서도 온천수가 나오는 곳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공간은 예쁘게 정비 되어있었고 발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구들방에 불이 지나가는 자리라서 장판이 새까맣게 타버렸던 것처럼 여기서도 온천수 주변은 발바닥이 뜨거웠다. 조금 더 걸어가니 온천수로 목욕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샘은 신이 있는 곳마다 기도를 했다.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냐고 물어보면 감사함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답해줬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무사하게 여행하고 있음에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사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길거리에서도 여기저기에 온천수가 흘렀다. 땅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연기가 올라오고 물이 쫄쫄쫄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도, 강과 이어지는 언덕에도, 길 모퉁이에도 어디에서나 흐르고 있었다. 샘은 너무 신기하지 않냐며 마법같다며 좋아했다. 나는 온천수보다 온천수와 섞여있는 수많은 쓰레기 더미가 더 신기했고 눈에 밟혔다. 안그래도 정비 안 된 길거리에 쓰레기가 면적의 반 이상 널부러져있고 그 사이에 뿜어져나오는 온천수였다. 혼자 물음표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 이렇게 좋은 자연의 선물을 받았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거지?
주변을 정비하고, 온천수가 나오는걸 활용해서 좀 어떻게 하면 안돼?
옆에 강도 있는데 공원을 만든다던지?
왜 이 소중한 자원을 이렇게 버려두고 사는거지. 여기만이라도 청소 좀 하면 안돼?
나만 쓰레기 더미에 충격 받는건가? 왜 다들 아무렇지 않는거야..
아무도 문제의식이 없다면 인도는 도대체 언제 바뀌는거야. 맨날 이렇게 살거야?”
쓰레기 더미 곁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온천수를 보면서 화가났다. 온천수가 흐르는 마을이라 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같은 걸 기대했다. 깨끗하고 조성이 잘 된 마을을 생각하며 왔다. 내 머릿속에서 겪은 온천은 일본 뿐이였으니까.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나의 좁은 경험으로는 온천수와 깨끗함은 같은 카테고리에 있어야 했다. 그게 당연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걸 인도는 그게 아니라고 정면 펀치를 때렸다. 나는 펀치를 맞고 화를 냈다. 너네는 왜 이렇게 살아. 이걸 왜 이렇게 두는거야. 이렇게 좋은 자원을 내버려두는 인도 정부에, 정부가 그렇게 지내도록 계속 내버려두는 시민들에게 화가 났다.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신을 위해서 사원안에는 온천수를 잘 활용해서 공간을 만들어뒀는데 시민들이 매일 밟고 지나가는 길거리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게 화가났다. 옆에서 들뜬 마음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샘과 달리 나는 말이 사라졌다. 아까 맞은 펀치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속으로 화를 오만상 내다 그건 내 생각이고. 라는 결론을 내렸다. 길거리가 무조건 깨끗해야한다는건, 아니 적어도 이렇게 관광지는 조성되고 깨끗해야 한다는건 그건 내 생각이고. 아무도 이걸 치워야한다는 의식이 없다는건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쓰레기 더미와 온천수가 함께할텐데. 그렇게 바뀌고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하는건 뭐든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환경에서 살아온 내 생각이고. 이들이 교육적으로 배운 경험이 부족해서 이런 면으로 생각이 없는걸까 생각하는것도 내 생각이고. 개발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그대로 두는게 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경험이 많아지더라도 여기는 그대로지 않을까. 쓰레기를 치워 보기좋게 예쁘게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인도는 안 바뀔건데 내가 바뀌어야 된다고 성급하고 무례하게 판단했다. 왜 안 바뀔까에서 바뀌어야할까로 생각이 변했다. 생각 소용돌이를 겪고나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내 고집을 내려두고 길거리를 걷고나니 쓰레기 외에 또 다른게 보였다. 종이를 잘라 시계 모양을 만들고 1,2,3 숫자 다음에 hungry를 표시해두고 헝그리 포인트를 강조하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귀여운 표현인걸. 그 골목에도 역시나 온천수가 흐르고 있었다. 아까는 쓰레기더미에 모든게 가려져 궁금하지 않았던 물의 온도에 호기심을 가졌다. 연기를 뿜어내는 물에 가까이 다가가 손을 호다닥 넣고 뺐다. 따듯했다. 연기가 올라오는 곳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가습기에 얼굴을 대는 느낌이었다. 스팀 마사지라는게 있다면 이런걸까. 샘이 보여줄게 있다며 어서 오라는 손짓에 따라갔다. 사람이 많은 manikaran shiva temple에 도착했다. 엄청 유명한 사원이었다. 원래 물이 안 흐르는 곳인데 시바신이 휴가를 보내는 동안 어쩌고 저쩌고해서 물이 흘렀다. 설화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 정도로만 기억이 난다.
곳곳에 낚시터같은게 보였고 사람들이 우물 같은곳을 둘러싸서 각자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온천수에 낚시하는건가? 뭐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샘을 따라가 절을 하고 이마에 주황색 붓칠을 당했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마에 발라주는 띠까를 난생 처음 받아봤다. 띠까를 받고나면 쌀을 조금 주는데 이것도 같은 의미라서 다 먹는게 예의라고 한다. 쌀을 오물오물 먹고 있으니 샘이 저기에 보이는 온천수로 만든 쌀이라고 했다. 더 궁금해진 마음을 한껏 품고 낚시터로 돌아갔다. 샘이 쌀주머니 하나를 사더니 다른 사람들처럼 손가락 낚시를 한다. 아하! 생 쌀이 들어있는 조그만한 주머니를 온천수에서 불려서 먹을 수 있는 밥처럼 만드는 액티비티였다. 그 밥을 먹으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나보다. 우물 같은 곳에 모여서 다같이 쌀을 담궜다 뺐다 한다.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니까 그만하고 싶어진다. 꼭 먹어야해..? 그냥 이제 가면 안 될까..? 싶은 마음이 계속 올라오는데 인도 사람들 진심이다.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온천수가 있는 여러 우물을 돌아다니며 더 뜨거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모두가 진심인게 너무 귀여웠다. 낚시에 흥미가 잃은 나는 샘이 알아서 하겠거니 냅두고 주변을 더 열심히 돌아봤다.
영상통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유명한 관광지에 왔으니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났나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곳의 광경을 보여줬고, 화면 속 상대방은 다들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였다. 생각해보니 샘도 사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했다. 친구에게 여기 왔다고 하니 제발 영상통화를 해달라고 했단다. 내 경험상 우리나라에서 절을 가면 가족단위 아니면 50대 이상 연령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젊은 커플들이 방문하는걸 많이 본 것 같진 않다. 반대로 여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젊은 커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우리는 데이트할 때 영화관, 좋은 카페 찾아가기, 맛있는 음식 먹기, 소품샵같은 구경할 수 있는 곳 가기라면 이 친구들의 데이트코스에 사원이 포함되어 있는게 아닐까? 와, 지역별로 동네별로 수백개의 사원이 있으니까 데이트할 맛 나겠는데? 오름 같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제주에는 갈 오름이 무궁무진하게 많고, 계절별로 뽐내는 장면들이 바뀌고, 내 마음에 따라 보이는게 다른 것 처럼 똑같지 않을까. 인도에 수많은 사원들 중에 잘 알려졌든 그렇지 않든 갈 곳이 끝이 없을테니까. 종교를 가까이 두지 않고 커온 나로서는 종교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이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러다 운 좋게 사원에서 밥을 만드는 광경도 목격했다. 밥 솥 10개정도를 가져오더니 온천수를 퍼서 그대로 솥에 붓고 다시 가져갔다. 온천수에 사람들이 던져놓은 수많은 동전들이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뭐...쉽게 죽..지..않겠...ㅈ...괜..ㅊ..ㅏㄴㅎ..ㅇ..ㅏ...
샘이 낚시를 끝내고 쌀 주머니를 야무지게 챙긴 후에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동굴같은 좁은 터널을 지나더니 맨 발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도 목욕탕이 있었다. 온천수를 활용해 만들어 둔 공간이었다. 동굴을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나왔다. 크고 넓은 다리가 있었다.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깃발이 펄럭이고 왼쪽과 오른쪽 각각 건물이 보였다. 오른쪽은 내가 걸어왔던 건물이고, 왼쪽은 새로운 건물인데 신비스러운 구름들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그 아래는 다리를 가로지르는 큰 강줄기가 있었다.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한겨울의 온도를 가득 머금은 채 차디찬 물이 흘러내렸다. 구름들이 번지고 있는 건물로 가보니 천연 수영장이 있었다. 온천수로 만든 수영장에는 사내들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팬티같은 수영복만 입고 들어갔다. 바깥공기는 차가웠지만 물은 꽤나 뜨거웠다. 샘과 나는 그곳에서 발을 담그고 밖을 봤다. 강줄기를 기점으로 한 쪽은 차갑고, 오래된 건물이고 다른 한 쪽은 뜨겁고 새로운 건물이라니. 한 공간에서 여러 시대를 오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