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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야반도주는 아닙니다만

새벽 4시, 큰 배낭 2개와 작은 봇짐 하나. 딱 봐도 야반 도주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우린 그저 갈 길이 먼 여행객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사라한의 마지막 공기를 마시고 올라탔다. 사라한에서 샘과 사라한을 떠나던 샘은 달랐다. 사라한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온 천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의식했다. 한국 시골처럼 서로 밥 숟가락 몇개있는지까지 아는 동네인데다 나는 유독 튀는 이방인이였으므로 둘이서 돌아다니는 목격담이 많아질수록 좋을게 없었다. 마을이 유독 작아서 그런지 소문은 빠르고 크게 번졌다. 샘의 강아지인 추부랑 함께 산으로 산책갔다 돌아왔는데 그 날 이후 우리는 국제부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저 같이 발 맞춰 걷고 있었을 뿐인데. 그래서인지 둘만 있을 때와 길거리에 누군가가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행동에 서운함이 들기도했다. 그래 우린 같이 몇일 여행만 하고 헤어질테니까 서운한 마음이 드는것도 웃기지. 히말라야 뒷산을 오르며 나누었던 대화들, 그가 내뱉은 생각 속에서 봤던 나의 모습들, 내 앞에서만 보여줬던 그의 닭똥같은 눈물, 친구들 사이에서 몰래 줬던 깊은 눈빛들,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고있는 우리를 차례대로 떠올리다 다 날려버렸다.


버스에 올라타면서부터 그는 나의 손을 놓지않았다. 마을에 본인의 가면을 두고 떠났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얼마 전 놀았던 람뿌르로 가서 길거리 음식을 하나 먹고서 다른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짐을 지키고 샘은 리와살이라는 작은 마을을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내 곁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 뭐 무슨 일 나면 니가 알아서 하겠지. 동행 하나 늘었다고 이렇게 마음이 풀어질 수가. 이전에는 이 버스인지, 저 버스인지, 저 사람이 나 왜 쳐다보는지, 내 음식을 탐내는지, 말을 걸고싶은건지, 돈을 훔치려는건지, 나는 이 말을 믿어도되는지, 아닌지, 전전긍긍하던 여행이 끝났다. 샘이 여기저길 알아보더니 버스 기사와 이야기해서 출발하기 전 버스에 먼저 탈 수 있었다. 밖은 추웠고, 먼지가 많이 날렸다. 덕분에 우리는 버스에서 조금이나마 따듯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기다릴 수 있었고, 음식도 사와 오순도순 먹었다. 아, 역시 말이 통하니까 이게 되는구나. 혼자였으면 저렇게 춥고, 먼지도 많은 곳에서 계속 벌벌 떨고 있었겠지. 그렇다고 현지인과 함께하면 만고땡도 아니였다. 우리가 탔던 버스는 원하는 목적지를 가는게 아니였다. 샘도 여기저기 물어물어 타게 된 버스였지만, 질문은 같은데 대답은 늘 달랐다. 이건 내가 혼자 여행할 때도 매번 겪던 당황스러움이였다. 


그렇게 물어물어 버스를 갈아타고 환승하며 리와살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해 밤 9시에 도착한 우리는 지칠대로 지쳤다. 그래도 배는 고프니까 체크인을 하고서 동네에 식당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대부분 닫혀있었지만 한 군데가 열려있어 무작정 들어갔다. 샘의 추천대로 음식을 시키고 밥을 먹으려던 참에 옆 테이블에서 말을 걸어왔다. 아무리 힌디어를 못하는 나라지만 샘이 똑같은 대답을 4번씩 하는건 알아챘다. 처음엔 말을 걸더니 어느새 샘의 옆자리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고프로와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누가봐도 취해보였다. 나는 애초에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 시간에 열린 식당은 별로 없을 것이고, 열렸다 한들 내가 눈 꼭감고 먹을 수 있는 위생상태일거고, 그러면 이 마을의 첫 인상을 눈 질끈 감는걸로 시작해야할거고, 더 피곤해질게 분명하니까 대충 과자랑 술이나 사서 집에서 때려넣다가 자고 싶었다. 그런데 샘이 영양가 있는 밥을 먹어야한다며 어떻게든 온 식당이었다. 그 식당 옆 테이블 아저씨가 말만 걸어온게 아니라 두 다리로 걸어와 샘 옆자리에 앉아버린거다. 그리고 나를 삿대질하며 일본인지 중국인지 국적을 물어보고, 고프로의 금액을 물어보면서 자꾸 관심을 가져서 내 마음은 쿵닥쿵닥. 아 저 사람, 고프로 들고 튀면 어떡하지. 나는 잽싸게 고프로를 내 등 뒤로 숨기고, 나에 대해서 뭐라고 지랄하는거지 짜증이 나고, 샘은 점점 정색을 하며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보다 못한 식당 주인이 어떻게든 취객을 데리고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모든게 언짢은 상황에서 샘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내가 집에서 대충 먹자했지. 휴. 이래서 인도는 밤에는 안 나오는게 낫구나. 좋을게 없구나. 식어가는 음식 앞에서 속으로 이런 저런 한탄중인데, 취객을 집에 보내고 온 식당 주인이 정중하게 사과했다.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오늘 술이 좀 과했던 것 같다고. 대신 사과한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문을 트더니 인도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래.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아. 인도는 사람이 많지. 그니까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 뿐이야. 식당 직원과 주인은 다음에 오면 더 잘해주겠다고 즐거운 여행하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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