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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피부처럼 붙어있는 색안경을 어찌 떼어낼 수 있을까

오늘은 까솔이라는 곳을 가는 날이다. 샘이 작년에 다녀왔는데 분명 나도 좋아할 거라며 자신있게 앞장섰다. 혼자 여행할 때는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그 곳의 숙소를 찾아보고, 어떻게 가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자주 지쳤던 것 같다.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행선지나 숙소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곳을 가는 방법을 찾아보는게 난감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나 지도로 찾을 수 없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는데 질문을 할 때 마다 버스 시간이 달랐다. 가끔은 노선도 달라졌다. 순수한 현지인들 같은데도 기본적으로 사기를 치는건가? 미디어에서 봐온 인도인 이미지가 불쑥 떠올랐다. 맨 눈으로 다닐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쓰게되는 색안경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샘과 함께 다니면서 알게된 건 그들이 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함께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다. 내가 가고싶은 행선지와 숙소를 고르면 샘은 그곳을 가는 방법을 현지인들에게 알아보는거였다. 내가 야간버스타고 20시간 이동하자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 때에는 샘이 중간에 하루 쉬었다 갈만한 동네를 알아봤고, 난 다시 그 주변에서 잘 곳을 찾아보는 방식이였다. 나는 이번 여정도 사라한에서 마날리까지 바로 가자고 호기롭게 외쳤다. 구글맵으로 검색했을 때 차로 7시간 거리니까 버스인걸 고려했을 때 10시간. 오케이 인도 프리미엄해서 12시간, 아니 14시간까지 생각했다. 그래봤자 하루의 반나절이니까 야간버스타기 딱 좋은 거리 아닌가. 여기 물정을 잘 알고 있는 샘은 그건 무리라며 마날리 가는 길에 리와살과 까솔을 들려 하룻밤씩 자고 이동하자고 했다. 특히 까솔은 내가 나중에 하게 될 공간 사업에 큰 아이디어를 줄거라며 꼭 데려가고 싶다고했다. 그렇게 떠나는 까솔이였다. 


아침에 까솔 가는 버스를 알아보는데 샘이 물을 때마다 역시 다른 대답들이였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들이 사기꾼이라서 그런게 아니였다. 까솔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어서 가장 가까운 만디, 만디에서 분따르로, 분따르에서 까솔로 환승여행을 해야했다. 매일, 매시간 마다 버스 상황은 달랐다. 어제는 오후 3시쯤 왔던 버스가 오늘은 오후 5시에 오는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지금 오는 버스중에 목적지에 가장 가까이 가는걸로 골라야했다. 내린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바꿔 타야했다. 우리나라처럼 버스가 시간에 맞춰 오지않을 뿐더러 예상을 뛰어넘는 지연과 그와 관련된 공지가 전혀 없다보니 계획을 짜는게 어려웠다. 어제의 버스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제와 똑같은 시간을 얘기해주고, 오늘 버스를 타봤던 사람은 오늘 시간을 얘기해준다. 버스 노선은 매번 바뀐다. 최종 목적지는 바뀌지 않겠지만 그곳을 가는길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예를들어 대구에서 국도를 이용해 서울로 가는데 그 길에 있는 모든 지역 버스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애초에 왜 고속도로로 안가지 싶은데 델리처럼 큰 도시 말고는 고속도로랄게 없어서 버스가 가는곳이 많다.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어차피 가는길이니 사람을 많이 태울수록 이득이라 자리가 있든 없든 무조건 승객을 태운다. 거리로 버스요금을 매기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멀리가는 사람이 있으면 땡큐다. 


처음에는 샘이 왜 타야하는 버스를 미리 알아보지 않을까 의아했는데 이 장면들을 접하고나서 그건 아무 의미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우리는 배낭을 매고 정류장으로 갔다. 샘이 이전처럼 여기저기 물었다. 만디라는 큰 정류장을 거쳐서 분따르를 들렸다가 마침내 까솔에 도착했다. 까솔에 내리자마자 설산이 떡하니 보였다. 벌써 설렜다. 느낌이 좋은데. 사라한에 가까워질수록 그렇게 기분이 좋더니. 오 느낌 비슷한데. 왠지 까솔 좋을 것 같은데. 나의 예감이 직감이 되길 바라며 샘을 따라갔다. 이번 숙소는 내가 예약하지 않았다. 샘이 시크릿 플레이스라며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고 호언장담해서 무작정 따라갔다. 무조건 좋은게 나올 보물상자를 열러 가는 기분이랄까.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들어간 길 입구에는 라이브 뮤직 카페&바가 보였고, 조금 더 지나자 모닥불을 피워 삼삼오오 모여있는 노포들이 나타났다. 메뉴판에 드디어 익숙한 음식들이 보였다. 오믈렛, 샌드위치처럼  당연히 어딜가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한껏 설렌 마음을 가지고 더 들어가보니 깨끗한 물줄기가 보였다. 설산을 따라 내려오는 물은 보고만 있어도 청량했다. 와 스위스....!까진 아니고 오스트리아 정도는 비빌 수 있겠군. 강을 건너 들어가는 길에 당나귀들이 지나갔다. 높은 키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많았고 그 옆에 수많은 바위들 중 몇 개는 카페와 숙소 이름이 적혀있었다. 보기만해도 피곤하고 어지러운 네온사인 대신 바위에 페인트칠해서 가게를 알리다니. 여긴 숨겨진 히피마을이 분명해! 


얼마나 신났는지 그 전까지 궁시렁대던 배낭 무게도 거뜬히 들고서 여기 저기 사진찍고 샘한테 여긴 얼마만에 왔는지, 저번이랑 얼마나 바뀌었는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는지 쫑알쫑알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그러다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지금 운영을 안 하는건지 공사중으로 보이는 공간들만 보이고 주인은 안보였다. 나보다 더 당황한 샘은 주인을 찾아 나섰고 화기애애 대화가 이뤄졌다. 샘은 본인이 매년 여기에 오고, 친구들도 자주 보낸다며 할인을 제안했고 주인은 할인을 조금 해줘서 1박에 17,000원인 텐트를 얻게됐다. 텐트 안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었고 꽤나 넓었다. 밤에는 엄청 추워서 괜찮을까 두려웠는데 주인이 담요를 하나 더 줬다. 고장나서 말을 잘 안듣는 텐트 지퍼를 열고서 짐을 풀었다. 숙소는 잘 모르겠지만 까솔에 하루만 있다가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동네같아 일단 2박을 하자고했다. 그 이후 그냥 1박할 걸 그랬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서 샤워를 하려는데 따듯한 물이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릴 때, 한겨울에 야외 샤워를 하며 덜덜 떨 때, 짐을 대충 풀고 짜이 한잔 마시는데 일반 물가 3배일 때, 넘쳐나는 기념품을 다 갖고 싶어서 제어가 안 될 때, 요리를 해먹으려고 시장을 봤는데 부엌마저 캠핑 분위기일 때. 시시때때로 섣부른 판단을 했나 생각했다.


장을 보고 부엌으로 왔다. 나는 또 생각이 많아졌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이 여기서 당연하지 않을 때 종지만한 내 그릇을 확인하고 얼굴이 빨개진다. 금방 숙소 주인과 친구들이 요리 하느라 여기저기 어질러놓고 아무데나 음식을 놔둬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들여다볼수록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건 금방 일어난 단순한 장면 때문이 아니였다. 금 간 타일들과 거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오랜 세월 기름때,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단 한번도 닦지않았을 법한 묵은때들, 오늘내에 제대로 다 씻어낼 수 있을까 싶은 냄비와 조리도구들, 음식하는 곳과 멀지않은 곳에 모여있는 음식물 쓰레기. 누군가에게는 별 일이 아닐텐데 나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애증과 애정은 한끗차이라고 얼마나 싫은지 좋은지 계속 바라보게 되는건 매한가지 아닐까. 내 기준에서 더럽다라는건 닦아내고, 치울 수 있는 정도였나보다. 몰랐다. 같은 환경에 계속 살아온 나는 그게 더럽다의 의미였다. 여기서는 그건 더러운게 아니였다. 당연한거고, 어쩔 수 없는거고, 엄청 깨끗하지 않을 뿐이였다. 인도와 나는 이렇게나 달랐다. 늘 마음 한 켠에 날 것의 캠핑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꿈꿨다. 그런데 나는 안 될 놈이였다. 물이 안 나와서 숙소 주인에게 말하니 양동이 한가득 물을 떠다주었다. 고마워하면서도 어디서 온 물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우린 이 물로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조리도구들을 씻고, 요리에 쓰고, 설거지를 해야하는데 배 아프지않을까 생각했다. 마냥 고마워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요리를 하다 자주 얼굴이 붉어졌다. 섬이나 화장실 없는 노지로 백패킹을 다닌 사람이라 위생상태에 개의치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마 백번을 더 가도 똑같지 않을까. 이건 내 태도의 문제이니까. 남미갔을 때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과거의 나를 꺼내 들춰보고 비교해보고 피곤해져 훠이훠이 생각을 날려버렸다. 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갈망하면서도 눈 앞에 펼쳐진 다른 세상을 보면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또 제자리 걸음을 했다. 


말 그대로 속 시끄러운 저녁 요리를 빨리 해치웠다. 생각을 곁들여 먹으려니 소화가 잘 안되었는지 속이 더부룩했다. 샘과 설거지를 하고서 밤 산책을 나갔다. 밤이되자 옆 숙소에서 edm이 광광 울려퍼졌다. 아 제발 이 대자연 속에서 이러지말자. 제발. 우리 평온하게 즐기자. 내가 이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방식과 저 친구들이 즐기는 방법이 달라서 속상했다. 인도에서는 길거리를 걸을 때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경적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이 마을에 와서는 경적소리 보다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보다 재미있게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조용한 인도를 찾았구나. 너무 행복했는데 또 아니였다. 우리는 또 달랐다. 내 심장까지 광광 울려대는 이디엠 소리를 뒤로하고 샘과 천천히 걸어나갔다. 꺼져가는 모닥불이 보여 그곳에 앉아 하늘을 봤다. 아, 까솔에 일주일도 있을 수 있겠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인도에서 인도 도망가기를 해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니 모든게 잊혀졌다. 눈 높이에는 설산이 있었고, 그보다 위에는 나무사이로 별이 춤추고 있었고, 멀리 떨어지지않아 달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달도 별도 이렇게 함께 빛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빛으로 설산이 보이다니. 이디엠도 경적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소리와 물소리, 적당한 사람소리로 무섭지 않은 적막이 흐르곤 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가슴골까지 한기가 느껴져 집으로 돌아갔다. 광광 울려대는 이디엠으로 다시 현실에 돌아온 것 같았지만 내일 또 저 별나라 달나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좋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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