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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이제는 나도 인디언?

얼마 전 쏨의 친구들과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이제 쏨 친구는 내 친구이기도 했다. 특히 샘이랑은 같이 히말라야 산책도 가고 여러번 만나서 노을을 보러 가기도 했다. 여느때처럼 게스트하우스 리셉션에서 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샘이 친구들이 놀자는데 같이 갈래? 물어봤고, 갑자기 솜 친구집에 놀러갔던 것 처럼 “빌꿀빌꿀(오브콜스, 물론이지)”을 외쳤다. 우리는 마을에 하나뿐인 바에 들려 자그만한 럼과 안주를 대신할 과일과 과자들을 샀다. 그리고 샘을 따라 쫄래쫄래 따라갔다. 내가 매번 다니던 그 길 한 켠에 다른 갈래가 있었는데 그 쪽으로는 처음 가봤다. 사실 매일 다니는 길이였지만 그런 길이 있는지 몰랐다. 그 곳은 매번 먼 산을 보며 ‘우와 히말라야..좋다..’ 입벌리고 지나가는 구간이였고 거기에 길이 나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했다. 현지인들만 알 것 같은 그 좁은 길을 샘이 앞장서서 갔다. 가는길에 처음보는 작은 사원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약수로 여긴다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만나기도 했다. 송전탑 근처에서는 이런 나무를 주우면 된다면서 가는길에 발 밑을 잘 보라고했다. 단단하고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뭇가지들을 찾으며 가다보니 우린 어느새 송전탑 아래 도착했다. 


산도 언덕도 아닌 덤불 같은 곳에서 이게 길이맞아? 의심하며 계속 쫒아갈 때 아지트같은 작은 평지가 나왔다. 누가 찾는대도 찾을 수 없고, 우리끼리만 아는 그런 곳. 사방이 뚫려있지만 동굴 같은 그 곳.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노는게야. 나뭇가지는 또 왜 이렇게 주워가는건지. 우리가 장 본걸 다 꺼내더니 음식을 담아온 빳빳한 봉투를 땅에 깔고서 나에게 앉으라했다. 샘은 혼자 바빴다. 나뭇가지를 차곡차곡 모으더니 불을 붙였다. 아, 본파이어! 나는 혼자 럼을 홀짝이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다 져버려 깜깜한 밤이 됐다. 그 때 어디서 소리가 나더니 모르는 두 얼굴이 왔다. 이번에는 처음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늘 그렇듯 반갑게 인사하고 이름을 주고 받았다. 융? 융? 윤! 그 중에는 두 아이의 아빠도 있었고, 결혼을 꿈꾸는 청년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피웠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같이 술을 마셨고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럼은 쭉쭉 들어갔다. 날이 추웠으니까. 모닥불은 참 밝고 따뜻했다. 주변엔 별과 달 밖에 없었으니까. 샘은 여기가 본인들의 아지트라고 했다. 그들의 집 위치상 중간이면서 사라한의 별과 달을 제일 예쁘게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처음에는 긴장했다. 이러다 여기 불이 나버리면 어떡해? 갑자기 너네가 너무 취해서 앞 뒤 구분 못하고 나한테 미친짓하면 어떡해? 근데 모닥불을 피우는 솜씨를 보니 한 두번 태운게 아니구나 싶었고, 이 작은 마을에서 그런짓을 한다면 너네는 살아남지 못할게야. 라는 동네 특수성을 믿었다. 나는 어떤 나뭇가지를 주워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들은 척하면 척하고 불에 타기 좋은 나뭇가지를 쉴 새없이 가져왔다. 본인들끼리 힌디어로 이야기하다 나에게 미안해하며 단어 하나하나를 붙여 영어로 말을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너 정말 좋은 사람같아” 나를 만난지 1분만에 그들은 확신하며 말했다. 나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모든 행동을 관찰했다. 그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최소 10분은 걸렸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켠에 계속 두면서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같이 춤을 췄다. 샘과 소울메이트인 샹칼과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노래에 엉덩이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췄다. 외국영화에서 여주인공 남주인공이 저 멀리서 서로를 알아보고 다가오며 추는 춤처럼 둘은 행복해하며 비트에 맞춰 춤을 췄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나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어깨춤을 들썩였다. 그러다 하늘을 보면 달빛이 우리를 밝혀주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고 별이 더 반짝 빛났다. 샘은 제대로 즐겨야된다면서 대뜸 나를 눕혔다. 나는 드러눕자마자 조그맣게 소리쳤다 “쉣”


눈높이가 맞았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내 눈앞에 별이 빛나는것처럼 보였다. 어떤 별은 너무 빛나서 히말라야의 한 능선이 보이기도했다. 그러다 춤추고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면 아무 생각이 안 들고 평온했다. 해지는 노을을 쳐다보는 것 처럼 아무 생각이 안들다 공상에 잠기다를 반복했다. 이 사람들 순수하게 노는게 나랑 잘 맞다 생각했다. 모닥불을 유지하는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였다. 히말라야의 차디찬 공기아래 나뭇가지를 여러번 구하러 가야했고, 플레이리스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 춤을 췄고, 한기가 느껴지면 럼을 한잔 털어넣고, 어렵사리 영어 한 단어씩 말을 걸어보고, 별과 달이 너무 예쁘지않냐며 공감대를 만들었고, 행복하게 웃다 불멍을 때리고,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그런 시간들이었다. 80년대 불놀이야 감성이 이런걸까. 우리로치면 “저 바닥에 누워~ 흐르는 강물이 될까~ 쭈쭈루쭈쭈쭈루쭈쭈” 이런거 틀어놓고 디스코처럼 손가락 찌르면서 막춤추면서 노는거 아닌가. 우리나라는 형,누나,동생이 아래 위로 4살 뭐 그정도만 쳐줄 것 같은데 여기 큰 형님 나이가 최소 띠동갑 이상이다. 여기서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연결되어있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친구가 된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 올 수 있을까. 다시 오지못할 세상인 것 같아 여기 와있는게 너무 행복했다. 


한참을 놀다 럼은 다 떨어졌는데 한기는 사라질 리가 없어 정리했다. 그들은 역시 고수였다. 잔불조차 허용하지않고 확실하게 불을 다 끄고 마을로 돌아갔다. 아지트에 대한 책임감 보소. 마을 가면서 큰 형님(두 아이의 아빠)은 내일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데 좋아할거라면서 점심 초대를 해주셨다. 오 땡큐땡큐, 나 가도 되는건가. 이 분은 오늘 처음 뵙는데..근데 아내랑 아이들이라니까 괜찮을려나? 문 앞까지 가서 다시 결정해야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활짝 웃었다. 오케오케 빌꿀빌꿀! 오늘 너무 재밌었다며 우리 꼭 다시 보자고, 같이 놀자고 서로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몇시인지 시간을 정하지도 않았다. 대략 점심즈음(1-2시경) 샘을 통해 집들이 방문 요청을 받았다. 나는 마을에서 과일을 좀 사고서 그 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서 예쁜 소녀같은 언니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 소녀같은 아내의 이름은 리듬이었다. 이름처럼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풍겼다. 오잉 어제 본 큰 형님은 없었다. 아, 본인은 없고 알아서 놀라는거였구나. 웃겼다. 초대한 주체가 없는 집들이라니. 인도 같았다.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은 나라. 인도의 하루는 늘 어디로 튈지 몰라 재밌었다.


아이들과 내가 잠깐 노는동안 리듬이 점심을 준비해줬다. 손님이라고 큰 접시를 내주어 열심히 먹었다. 홈메이드 달은 이런 맛이구나. 밖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라 맛있었다. 리듬과 나는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였으므로 더듬더듬 거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같은 포인트에 웃고, 흥분했다. 여성의 인권에 대해 항상 남자애들이랑 가볍게 얘기했는데 같은 여성이랑 얘기해볼 수 있었다. 리듬은 카스트제도를 혐오했다. 본인은 높은 계급이고 본인 남편은 차이가 많이 나는 낮은 계급이라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심해 결국 집을 떠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있고, 본인 아이들은 본인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잘 크고 있으니 만족한다며 후회하지 않는다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스투피드 카스트는 빨리 사라져야하는데, 인도는 많이 바뀌고 있다고. 지금은 애들이 성 관계없이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변화하는 인도를 지지했다. 물론 아직도 보수적인 부분도 많지만, 변화하고 있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었다. 저번에 솜과  비백이랑 얘기할 때 그들은 나처럼 여행하며 인생을 즐기고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결혼할 수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웃기지 않았다. 


“비백, 그니까 너는 지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결혼할 수 있는거잖아. 엄마가 어떤 여자든 찾아준다 했잖아.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인도 여성의 인권이야. 여성은 선택권없이 결혼해야하는거 아니야? 너는 언제 결혼할 수 있는지 선택권이 있는데, 여성은 아니잖아. 언제인지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는게 현실 아니야?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선택권이 없다는게 문제인 것 같아.” 


남자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는 여성 인권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리듬과 대화를 해보니 희망적이었다. 결과보다는 변화중인 과정에 집중을 하는 리듬은 본인의 삶을 즐겁게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든일도, 슬픈일도 있겠지만 누구든 뭔 과정인들 안 그럴까. 리듬이 원하는대로 속도는 느릴지언정 계속 바뀌길, 이렇게 희망을 품고 변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계속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하길 바라며 그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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