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이어지는 밤

야광귀의 의뢰 (3) – 향을 피우는 소녀

by 두부

4화


야광은 카운터를 넘어

카페 사장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은은한 연기와 함께

부드러운 향이 퍼졌다.


처음엔 달콤하기만 했지만,

숨을 들이쉴수록 묵직한 힘이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꿈속에 빠진 듯 흐려졌다.

다행히 눈치챈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 냄새, 설마…?’


요한은 주위를 둘러보다,

저 멀리서 향을 피우는 소녀를 발견했다.


짙은 흑색의

삐뚤어짐 하나 없는 반듯한 단발머리,

새하얀 얼굴에 작은 체구.

그러나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이래서 아빠가 날 보냈구나.

사람을 헤치려고 현신하는 악귀라니… 재밌네.”


소녀는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요한은 부적을 보자 가슴이 쿵 꺼졌다.


“설마… 그 부적…!”


소녀는 요한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렇게 긴장해?

이건…

잠깐 재우는 부적일 뿐이야.”


요한은 다급히 소녀의 앞을 막았다.


“잠깐만요!

그녀를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죠?”


“해칠 생각은 없어.

그냥, 너무 날뛰면,

재워야 하니까.”


“부탁이에요.

제가…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보이던데...”


“그래도 제발…

시간을 좀 주세요.”


소녀는 요한을 가만히 응시하다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리며 씨익 웃었다.


“흐음…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한 번은 봐줄게.”


바로 그때, 향에 휘감겨 있던 야광의 음기가 풀리며,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짙은 어둠이 흩어지자,

차갑던 악의가 사라지고,

거칠던 숨결은 잦아들었다.


어두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한 은빛이 피어나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요한은 소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나타나 향 하나로 악귀를 잠재우고,

부적까지 다루는 사람이라니.


… 도대체 누구지, 이 아이?


체육복 차림.

근처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요한은 학교를 그만둔 지 오래였고,

요즘은 가게 안에서만 지냈다.

자신을 아는 또래 소녀가 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 아세요?”

“통성명은 나중에.”


소녀는 턱으로 야광을 가리켰다.

“지금은 네 일부터 마무리해.”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야광에게 다가갔다.

몸을 낮춘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야광 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이제 괜찮아요. 무서운 건 다 지나갔어요.”


야광은 흐릿한 눈동자로 허공을 헤매다,

요한의 얼굴을 알아보고 힘겹게 눈을 맞췄다.


“… 저, 방금… 어떻게 된 거죠?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자꾸… 못된 생각만 들었어요.”


요한은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다시 돌아오셔서.

정신 뺏기지 않도록 꽉 붙들어 매세요.

할 수 있죠?”


요한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나저나… 아까, 야광 님을 죽였다던 그 사람이…”

“쟤요. 쟤.”


야광은 여전히 카페 사장을 가리켰다.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폭주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쟤가 날 죽였어요. 그리고… 내 신발도 가져갔고요.”

“야광 님, 야광 님은 여기 계세요.

제가 가서 얘기를 나눠볼게요.”


요한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신발을 가져간 사람을 찾았잖아요.

이제 되찾기만 하면 돼요. 그렇죠?”


“… 정말 그렇네요.”

요한의 다정한 말투에 야광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녀에게 앉아 있으라 하고,

요한은 카페 사장에게로 향했다.


사장은 아직도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야광의 손자국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요한은 숨을 고르고,

카페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실례지만…

잠깐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예전에 나이스 영어학원…

다니신 적 있으신가요?”


사장의 얼굴이 굳더니, 금세 하얗게 질렸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신발 하나를 찾고 있어서요.

꽃 그림이 그려진…”

“……뭐라고요?”

“그 학원 옥상에서

누군가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지금 찾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사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터지기 직전처럼 분노가 차올랐다.


“장난치는 건가요? 일부러 떠보는 거죠?”

그녀의 눈매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이거… 몰래카메라예요? 유튜브 찍어요?”


목소리가 커지자, 하나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나가요!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겁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진정하세요 사장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요한은 애써 미소 지으며 물러났다.


구석에 앉은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요한을 쳐다보다가

입가를 비죽 올리며, 코웃음을 흘렸다.


“야광 님, 플랜 B로 넘어갈게요.

손님들 빠질 때까지 기다리죠.”




시간은 흘러 가게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손님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마지막 남은 커플이 가게문을 열고 나가자—

사장은 성큼성큼 요한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장난을 치려고 이러는 거예요?

보아하니 학생 같은데… 학교는 어디죠?

경찰 부르기 전에 말해요.”


소녀는 등을 기대고 앉아,

요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썹을 들어 올린 얼굴에는 조소가 스며 있었다.


요한은 심호흡을 하고는

사장의 시선을 망설임 없이 똑바로 마주했다.


“사장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제가 지금, 그 친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 신발 얘기도 그분께 들었어요.”


사장의 눈빛이 번쩍였다.


“… 그래? 아주 제대로 준비하고 왔구나.

어디서 들었는진 몰라도…

잘 알아냈네.

그래, 나도 더는 못 참아.”


사장은 이를 악물고

핸드폰을 꺼냈다.

손끝이 112를 눌러가는 찰나—


요한은 곧장 손을 뻗어,

야광의 팔과 카페 사장의 팔을 동시에 붙잡았다.


“사장님, 놀라지 마세요.”

나긋한 목소리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


요한의 손끝에서 맑은 기운이 번져나갔다.

카페 안 공기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따스한 손길처럼 그 둘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서서히 엷어졌다.


팔짱을 낀 채 한발 물러서 있던 소녀는

이번엔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조용히 집중했다.


‘확실히 재밌어.’


분명 능력은 서툴렀지만,

요한이 그 둘에게 공감하고 진심을 담을수록

그 힘은 점점 뚜렷해졌다.


목구멍이 막히고, 가슴이 울렁였다.

기억도, 감정도, 전부 밀려들었다.

요한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어깨가 들썩이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지금껏 요한을 지켜보던 소녀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역시 신안만 있는 게 아니었어.


… 제법 쓸만할지도?’


그제야 사장의 눈에도

야광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엔 안개 같은 실루엣이었지만,

점점 선명한 형체로 눈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온전히 그 앞에 자신을 드러냈다.


“... 희, 희진이…?”


사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는 한 발, 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넌 죽었잖아...


너… 뭔 짓 한 거야? 이것도 장난이지?”


돌연 사장은 요한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그 외침 속에는 공포와 죄책감이 뒤엉켜 있었다.


“오랜만이야.”


야광의 입에서는 예상외의 고요함이 흘러나왔다.

그 눈에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모든 걸 꿰뚫어 본 것처럼,

깊고 잔잔한 평온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장은 그대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야광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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