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버스의 의뢰 (2) - 나도 연애하고 싶어요
중세 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인큐버스는
잠든 여성의 꿈속에 찾아가 유혹하는 악마였다.
반대로 남성의 꿈에 들어가는 악마는 서큐버스라 불렸다.
이들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죄의 형상이었으며,
여인을 임신시킨다는 믿음까지 더해져 오래도록 불길함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전설 속 존재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푸른 눈빛의 그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끌려들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
"네, 그럼 데미안 씨..."
"대민입니다."
"네?"
"대민이라고 불러주세요."
요한은 잠시 당황했지만, 바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네, 대민 씨.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사실은…"
대민이 말을 멈추고 시선을 떨궜다.
그러자 곧 흠칫 놀라며, ‘헙’ 하고 짧은 숨을 삼켰다.
요한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자,
탁자 밑에 앉아 있는 고모가 보였다.
입꼬리를 귀 끝까지 찢어 올린 채,
대민을 바라보며 씰룩거리고 있었다.
요한이 다급히 손짓하자,
고모는 뽀로통한 얼굴로 천천히 바닥에 가라앉았다.
"…죄송합니다.
저희 고모가 외국 요괴는 처음 보셔서요.”
대민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품위 있게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살아생전 뵈었다면,
제가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의뢰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실… 요한 씨를 찾아온 건,
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요한은 눈을 깜빡였다.
"어떤 분이신데요?
혹시… 서큐버스?
굉장히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네? 서큐버스라니요.”
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악마 특유의 푸른 기운을 내뿜었다.
“걘 그냥 동료예요.
솔직히, 하나도 안 예쁘고요.
사람들 눈이 다 삐었나 싶을 정도예요."
대민의 반응에 요한은 가슴이 철렁해 얼른 사과를 했다.
"아… 제가 너무 성급했네요.
기분 상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대민 님이 좋아하게 된 그분…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실래요?"
그 순간, 대민의 눈빛이 달라졌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 부드럽게 흔들렸다.
"아시다시피, 전 여성의 꿈에 들어가
교감을 나누는 존재예요.
억눌린 욕망을 풀어주고,
위로해 주며, 자신감을 되찾게 하죠.
매우 의미 있는 임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녀는 달랐어요.
밤마다 찾아갔지만,
도무지 잠을 자지 않더군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채,
화면만 바라보는 거예요.
저는 기다리다 아침 수탉이 울면
물러나곤 했죠.
처음엔 답답했지만...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만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래서 그 곁에 머물렀어요.
한 달 넘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다 됐다!’ 하고 외치는 겁니다.
그리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눕더니, 금세 곤히 잠들었죠.
그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마치 아기 같았습니다.
새근새근,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옆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꿈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지켜만 봤죠.
그리고 수탉이 울었을 때
전 깨달았어요.
스쳐 지나가는 관계가 아니라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걸…
하룻밤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대만의 푸른 눈동자가 한층 더 깊어졌다.
“요한 씨, 전…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요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순한 의뢰가 아니었다—
일생일대의 로맨스였다.
요한은 숨을 고르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사랑... 인 거죠?
그분과, 진짜 연애를 하고 싶으신 거, 맞나요?”
대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요한의 가슴속에서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요괴든 인간이든, 사랑에 빠진 얼굴은 모두 똑같구나.
“순수한 그 마음,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저도 꼭 돕고 싶어요.
다만… 전 큐피드가 아니라서,
그분도 대민 님을 좋아하게 할 순 없어요.”
대민은 눈을 빛내며 요한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저에게 반할 수 있을까요?
방법이 있다면, 제가 뭐든 노력해 보겠습니다.”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감동하여,
인큐버스의 두 손을 잡았다.
“대민 님의 진심만 있으면 됩니다.
제가… 함께 도와주겠습니다.”
알 수 없는 서늘함에 요한은 움찔했지만,
그 감각을 애써 외면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지금 내뱉은 그 한마디가
신계의 금기를 건드린 선택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