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를 찾아서

인큐버스의 의뢰 (3) - 복실이를 따라

by 두부

8화


피 끓는 열여덟의 남자라면

연애는 세상에서 가장 큰 관심사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아니었다.


열일곱부터 심부름센터를 지켜온 그는,

일과 의뢰 외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잠깐의 풋풋한 썸이 전부.

연애는커녕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요한이 기댈 건 간접경험뿐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책 속에서 본 사랑의 장면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그의 연애 전략도 거기서 출발하기로 했다.


“대민 님, 혹시 그분 이름은 아시나요?”

“당연하죠. 한 달 넘게 곁에 있었는걸요.

그녀의 이름은 윤마리입니다. My Maria.”

“직장이나 사는 곳은요?”

“사는 곳은 몰라요.

전 그저 그녀의 기운을 따라가니까요.

직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 뭘 계속하던데,

화면에 ‘치킨치킨런런’이란 글자가 계속 떠 있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누가 치킨이지? 왜 자꾸 도망가래?’”


그러면서 대민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치킨치킨런런~ 치킨치킨런런~”

가사까지 정확히 따라 부르는 소리에

요한의 귀가 번쩍 열렸다.


“잠깐만요… 그거, 게임이잖아요!”

요한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치킨치킨런런'.

요즘 가장 화제를 모으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한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BGM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검색창에 게임 이름을 입력하자,

작은 인디 게임사가 하나 떴다.

공식 연락처는 없었지만—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었다.


요한은 팔로워 목록을 훑다

익숙한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이태이?”


손가락이 저절로 그 계정을 눌렀다.

테이의 셀카, 친구들과 찍은 사진, 맛집 인증샷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생각보다… 인싸네.

학교생활도 엄청나게 잘하잖아.”


“사장님, 뭐라고 하셨어요?”

요한은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긁었다.

“아, 아닙니다!

대민 님, 그분 성함이 윤마리, 맞죠?”

“네! Ma Maria!”

대민의 푸른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좋아요. 그럼, 이제 제가 전략을 세워볼게요.

마리 씨에게 다가갈 방법,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명함을 받아 들고 돌아서는 대민의 뒷모습을 보며,

요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꼭… 이 사랑을 이어주고 말겠어!”


마리의 SNS는 단출했다.

적힌 정보라곤 92년 3월 8일 생일 하나뿐.

요한은 날짜를 수첩에 적고 사진들을 훑었다.

유독 한강 공원에서 찍은 강아지나 노을이 담긴 풍경이 많았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

요한은 알람을 4시로 맞췄다.


그때 도어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장승 대감이었다.

“아저씨, 오셨어요?”

“오냐, 어젠 잘 잤냐? 보아하니 외국 요괴 녀석이

날 밝기 무섭게 오더만.”

“네… 아, 맞다. 아저씨.”


요한은 새벽에 보던 의뢰록을 꺼내 문양을 내밀었다.

“이 문양, 혹시 아세요?

아저씨는 오래 사셨으니까요.”

장승은 한참 들여다보다 얼굴이 굳더니

책을 덮고 낮게 말했다.

“요한아, 이건 정말 오래된 기록이란다.

지금 세대에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미 다 끝난 일이야.”

“그렇지만…”

“약속해, 이건 묻는 걸로…”


어두우면서 단호한 눈빛에

요한은 더 묻지 못했다.

“네, 아저씨.”

다시 서랍 깊숙이 넣으며,

손끝에 남은 묘한 기운을 애써 털어냈다.



4시가 되자 요한은 한강으로 향했다.

사진 속 벤치와 건물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5시, 6시… 해는 뉘엿뉘엿 넘어갔다.

점점 지쳐갈 즈음, 그는 결심했다.


“복실아, 복실아!”


멀리서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뛰어왔다.

요한은 한쪽 무릎을 굽혀 복실이와 눈을 맞췄다.

“복실아, 너도 바쁠 텐데 미안해.

이번 의뢰는 나 혼자 힘들겠어.

임신년, 계묘월, 계미일.

윤마리.

지금 그녀의 영혼은 어디 있어?”


복실이는 컹컹 짖더니 바람을 맡았다.

그러고는 몸을 솟구쳤다.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삽사리.

세상 모든 영혼의 냄새를 맡기 때문에

찾지 못할 영혼은 없다.


요한은 복실이를 따라 달렸다.

숨이 차오를 때쯤,

한강 다리 근처 벤치 앞에서

복실이가 멈춰 섰다.


그곳에 앉은 사람은 틀림없는 윤마리였다.

하나로 묶은 머리, 짙은 다크서클.

편안한 차림의 그녀는 복실이를 쓰다듬다,

요한이 다가오자 눈을 치켜뜨며 툭 내뱉었다.


“주인이세요?”

“네,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요,

줄을 안 하고 다니면 어떡해요?

그러다 아이 잃어버리면 어쩌려고요!”


날 선 호통에 요한은 얼어붙었다.

“리드줄 없이 산책하면 벌금이에요.

생명을 키운다는 건 그만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이 개는—”


“아줌마, 죄송해요.”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 줌마요?”

“네, 아줌마. 얘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요한이 놀라 돌아봤다.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웃고 있는—

“이태이?”

“응, 김요한?”


마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요한은 손을 뻗으려다 멈추고,

그 뒷모습만 바라봤다.

“이태이, 나 일하는 중이었어.

방금 저분이랑 얘기해야 했는데…”

“일이었다고? 너 진짜 일머리 없다.”

태이는 요한의 얼굴 가까이 다가와 피식 웃었다.

“특히, 사람 상대는 영 꽝이야.”


요한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태이가 쪼그려 앉아 복실이를 쓰다듬자 말을 접었다.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냐?”


복실이는 배를 보이며 벌렁 드러눕고 꼬리를 흔들었다.

“복실이야.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요한이 엉덩이를 두드리자, 복실이는 집으로 달려갔다.


가방을 고쳐 메며 요한이 말했다.

“난 이제 가게로 가야 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태이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같이 가자. 나도 갈래.”

“넌 못 들어와. 규칙이 있거든.”

“괜찮아. 그래도 그 앞까지만이라도.”


결국 버스에 나란히 올랐다.

둘은 인사동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담벼락 앞에서 요한이 멈췄다.

“여기야. 난 이제 들어가 봐야 해.

근데 여기까지 왔는데… 근처에서 차라도 마시고 갈래?”

“됐어.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

얼른 들어가.”


요한은 담벼락 앞의 장승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담 안으로 사라졌다.


습관인 듯 천천히 말려 올라간 태이의 입꼬리를 보니,

들어올 작정인 게 분명했다.


곧 장승 대감이 붙잡고 혼내겠지.

괜찮으려나…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 설마, 울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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