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버스의 의뢰 (4) – 경계 너머의 그녀
무당들이 이 골목 상점에 들어오려 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령 부적, 두두리 장신구 같은 물건들이 즐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장승 대감에게 붙잡혀 혼쭐이 났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 광경을 여러 번 본 요한은,
솔직히 태이가 이 담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길 바랐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자라면,
이 담벼락의 유혹을 모른 척 지나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요한은 그 앞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분명 들어오려는 눈치였는데…
안 되는데. 진짜 혼날 텐데.”
결심한 듯 나가려던 그때—
담 사이로 태이가 스르륵 나타났다.
“이태이? 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안 혼났어?”
“응? 장승 대감이 그냥 문 열어주던데?”
“아저씨가?!”
요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주변에서 정령들이 “사람이야?” “어떻게 들어왔대?” 하며 웅성거렸다.
요한은 머쓱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하.”
그러고는 태이의 팔을 잡고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 여기가 네 심부름센터구나.”
태이는 의자를 빼려다 몸을 움찔했지만, 곧 서글서글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요한이 친구, 이태이입니다.”
탁자 위로 고모가 올라왔다.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귀 끝까지 찢어진 입술이 꿈틀거렸다.
“사이좋….게 지내.. 크크으”
그러곤 미끄러지듯 벽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셔?”
태이는 아까 빼려던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고모. 친고모는 아니고… 고모할머니의 할머니? 어쨌든, 고모야.”
“아, 뭔지 알아.”
태이는 한쪽 입꼬리를 습관처럼 말아 올렸다.
요한은 그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이태이, 너 진짜 사람 맞아?”
“당연하지.”
“아니, 아무리 무당이라도 여긴 못 들어와. 사람은 나밖에 못 들어오는데...”
“너야말로 사람 아닌 거 같은데.”
실실 웃는 태이의 태도에 요한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진지하게 받아 줘. 너 정체가 뭐야? 사람이야, 귀신이야?”
이번엔 장난기가 사라졌다.
태이는 요한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냈다.
“아빠가 말한 사람이니깐. 믿어볼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 말을 이었다.
“사실 난 태귀야.”
요한은 눈만 껌뻑였다.
“…태귀?”
“응. 내 아빠, 귀신이야. 엄마가 모시는 몸주신.”
요한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엉켰다.
“너 지금 표정, 얼마나 웃긴 줄 알아?
입 벌리고 있다 침 흘리겠네.”
“장난치지 말고, 태이야.
아빠가 귀신이라고? 무슨 신이셔?”
“장군님이야, 장군신.”
요한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잖아.
아무리 무당이라도 귀신이 사람하고—”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태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너도 그 사람 앞에서 귀신을 보여줬잖아."
“… 그건 잠깐이야.
그리고 내 힘은 옛날부터 내려온 거라, 금지법이랑은 상관없어.”
태이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럼, 네가 하기 전엔? 그 귀신, 사람을 잡았잖아?”
“그건…”
태이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가 어딘지는 알았으니, 종종 놀러 올게.”
문을 나서다 잠시 멈추고 요한을 돌아봤다.
“또 보자.”
도어벨이 울리며 문이 닫혔다.
요한은 태이가 가고 나서
책상에 엎드려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닭이 울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민 님, 오늘도 문 열자마자 오셨네요!”
요한은 기지개를 켜며 대민을 맞았다.
대민은 들어오자마자 질문부터 했다.
“뭐 좀 알아내셨나요?”
“네, 제 전략은 “정”이에요.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 전법, 아시죠?
매일 보다가 안 보이면 괜히 더 보고 싶어지는, 그거요!”
요한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신이 나서 말했다.
“만난다고요? 하지만 현신금지법이…”
“제가 잠시 풀어드릴 겁니다. 오래는 못 하고, 짧게는 가능해요.”
그 한마디에 대민은 해맑게 따라 웃었다.
요한은 복실이에게 리드줄을 채우고,
대민과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임신년, 계묘월, 계미일… 윤마리.”
복실이는 냄새를 맡자마자 몸을 들썩였다.
그러나 리드줄에 묶여 있으니,
두 발로 서듯 요한을 끌며 낑낑댔다.
“이렇게 잡아당기면 애가 아파하잖아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마리였다.
“어제 그 사람이죠? 그래도 오늘은 줄을 했네.”
마리는 몸을 숙여 복실이 목을 살피며 매만졌다.
요한은 재빨리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대민의 팔도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산책할 때, 강아지 배려 좀…”
마리가 고개를 들자, 놀란 숨이 헉 새어 나왔다.
“그런데… 아까 저분이 계셨던가?”
마리의 시선이 대민에게 닿자,
대민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저… 저 보이세요?”
“네, 당연히 보이죠. 그런데 누구…?”
대민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어깨가 들썩이며,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대민입니다.”
그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마리가 얼떨떨한 채로 손을 잡자,
대민이 그 손을 끌어당겨 손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Bonita Maria.”
“네?”
요한이 화들짝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제 삼촌이에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한국 문화를 잘 몰라요. 게다가 시차 적응 때문에 좀 오락가락...”
“삼촌이 외국인이에요?”
“그… 먼 삼촌이요. 먼~~
어쨌든 저흰 가볼게요.”
요한은 억지 미소를 짓고 대민을 질질 끌어냈다.
마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속삭이듯 외쳤다.
“대민 님!”
하지만 대민은 여전히 마리가 있던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은 대민의 얼굴 앞에서 두 손을 탁! 마주쳤다.
“정신 차리세요! 큰일 날 뻔했잖아요.
처음 만나는 사이로 알 텐데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요?”
“아, 그렇네요! 저도 모르게…”
“그리고 제가 분명 5분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5분!
제가 가자고 하면 바로 따라오셔야 해요.
아니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질 텐데—
윤마리 씨가 어떻게 느끼시겠어요?”
“무…서워할까요?”
“그렇겠죠, 그러면 다신 기회조차 없게 돼요.”
대민이 크게 끄덕였다.
“매일 이 시간에 만나는 걸로 해요.”
그때부터 복실이를 사이에 둔 만남이 이어졌다.
요한은 어김없이 마리에게 혼났다.
복실이 마실 물을 안 가져왔냬, 이름표가 없냬
잔소리를 계속 들었지만,
마리를 볼 때마다 행복해하는 대민을 보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잘 어울린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에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몇 번의 만남이 거듭되자,
둘은 복실이를 어루만지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웃었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서
요한과 대민도 진짜 조카와 삼촌처럼 가까워졌다.
5분이 다 되어가자,
요한이 손짓했다.
“마리 씨,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또 이렇게 빨리요?”
마리는 말끝을 늘리며 일어선 대민을 올려다봤다.
대민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자,
요한은 얼른 나섰다.
“삼촌, 우리 일이 있잖아요.”
대민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마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또 만나요. Ma Maria…”
그의 목소리에는 애정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마리의 볼이 희미하게 물들었다.
그 순간—
복실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채.
요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람이 뺨을 스쳤다.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