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은 자들

인큐버스의 의뢰 (6) – 금단의 경계

by 두부

11화


사람들이 빠져나간 신당은 정적에 잠겼다.

무당은 주름진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태이는 그 앞에서 눈을 마주했다.


“엄마, 왜 그랬어?”


무당은 미동도 없이 딸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 부적… 천귀퇴산부 아니었어.”

“태이야, 엄마는 멀리 내다본 거야.”

“엄마, 그 여자 살릴 생각 없었잖아.”


무당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아직 너는 엄마와 아빠의 의도를 다 알 수 없어.

그리고 사람의 운명을 한낱 무당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태이는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밀다 말고 멈췄다.


“난 요한이를 도울래.

거짓말도, 속임수도 싫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그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요한은 가게로 뛰었다.

신계의 법령 문서를 찾아야 했다.

분명 신과 합의하면 저승행을 면할 예외가 있을 것이다.


골목을 꺾자, 담벼락에 서 있는 태이가 보였다.


“이태이? 여긴 무슨 일이야?”

“요한아, 할 얘기가—“


그 순간, 공기가 찢어지듯 갈라졌다.

그 사이에서 대민이 나타났다.

품에 안긴 마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삼촌!”


요한은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시간이 없어. 요한아, 가게로…”


땅이 울림과 동시에 장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렁찬 호령에 공기가 멎고 일제히 몸이 굳었다.

“네 이놈!

외국 요괴 주제에 살아 있는 인간을

담장 안에 들이려 하느냐?”


“아저씨!”

요한이 장승 대감 앞으로 나섰다.


“지금 안 들어가면 큰일 나요.

이 누나, 저승사자가 데려갈 거예요!”


“수명이 다했으면, 저승으로 가는 게 순리다.

그걸 어기려 하느냐?”


“아저씨, 제발요. 절 봐서라도, 한 번만 눈감아주세요…”

요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한 번만요…”

그는 장승의 팔에 매달린 채 눈물을 주르르 쏟아냈다.

장승의 마음이 흔들렸다.

신계의 법칙은 고지식했고,

신들은 답답할 만큼 꽉 막혀 있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장승이었지만,

요한을 보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저 여인은 이미 명부에 이름이 올랐다.

그러니 살아 있어도…

죽은 자나 다름없지.

죽은 자는 담을 넘을 수 있어.”

장승이 담벼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만 저승사자는 내가 끝까지 막지 못한다.

그전에 네 할 일을 해라."


요한의 젖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장승 아저씨,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는 장승을 잠깐 끌어안고,

대민과 마리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태이가 그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장승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징계는 피하지 못하겠군."


요한은 가게 문을 열고 대민을 뒤쪽 방으로 안내했다.

마리를 눕히고 나온 대민은 창백해져,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는 요한을 붙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부적만 있으면 집엔 못 들어온다면서요!”


“그거… 진짜 부적 아니었어.”

태이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태이야, 무슨 말이야.”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 그 얘기였어.

… 가짜였어.”


“가짜? 가짜였었다고…?”

대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너 지금 장난해? 마리 씨가 죽을 뻔했다고!”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더니, 지옥의 파동이 가게 안을 덮쳤다.

선반 위 물건들이 덜컹거렸다.

그러자, 복실이가 이를 드러내며 낮게 울부짖었다.

대민과 태이 사이에 서서, 정면으로 그를 노려봤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때 뒤편 방에서 부서질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대민 씨, 그러지 마요.”

“마리 씨! 깨어난 거예요?”

“네, 순간 이동은… 역시 사람이 버티기 힘드네요.”


마리가 힘겹게 웃었다.

요한과 태이의 눈이 커졌다.


“누나, 지금 대민 삼촌이 보여요?!”

“응. 그러니까 날 안고 여기로 왔지.”


“장승 아저씨 말이 맞았네요.

명부에 오른 사람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진가 봐요.”


마리의 눈길이 대민에게만 머물렀다.

그 표정을 보고, 태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마음이 통한 거야.”


그러나 태이의 마지막 말은

대민이 쓰러지자 공중에서 묻혔다.


“대민 씨!”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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