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버스의 의뢰 (8) – 남두와 북두
달과 별빛이 쏟아지는 새벽 1시, 자시.
남산은 이미 케이블카도 끊겼고, 인적도 사라졌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소리만이 적막한 공기를 흔들었다.
정상에 오르자 팔각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안에서는 바둑판을 사이에 둔 노인 두 명이 마주 앉아 한참을 고심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거 실화야?”
태이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진짜로 바둑을 두고 있어.
새벽에, 남산 꼭대기에서, 저 둘이.”
이번엔 소리를 낮춰 요한에게 속삭였다.
“한 명은 엄청 잘생겼고, 한 명은 되게 못생겼네.
들었던 거랑 똑같아. 완전 대박.”
요한은 태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흥분 금지.”
눈을 맞추며 짧게 웃어 보이고,
곧장 노인들 쪽으로 걸어갔다.
“칠성신 님, 안녕하세요.”
두 신은 요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툭, 툭, 바둑알만 내려놓았다.
요한은 가방을 열어 술병과 안주를 꺼냈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그제야 한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청주에 백설기입니다.”
“에이, 너무 뻔하다.”
다시 고개를 거두려는 찰나,
요한은 다른 술과 음식도 꺼냈다.
“뻔하니깐 준비했습니다.
막걸리와 수육!”
그러자 두 노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못생긴 쪽, 북두칠성이 말했다.
“하, 그래. 이런 게 치성이지.”
잘생긴 남두칠성이 맞장구쳤다.
“우릴 만날 청정한 신이라면서,
탁주는 안된다, 잡내 나는 음식도 안 된다...
아유, 우리도 맛있는 거 좋아한다고!”
두 신은 막걸리를 잔에 따르고, 수육을 한 점씩 집었다.
“건배.”
“천상에서.”
짠— 소리와 함께, 달빛 아래 막걸리잔이 빛났다.
요한과 태이는 옆에 앉아,
노인들이 잔을 비워가는 걸 묵묵히 바라봤다.
막걸리 한 병쯤 비워졌을까.
술기운이 오른 북두칠성이 입을 열었다.
“자, 이쯤 되니 묻고 싶구먼.
우리를 이렇게 접대하는 데엔…
의도가 있을 테지?”
그의 시선이 요한을 꿰뚫었다.
요한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았다.
“그래.
어떤 아이의 수명을 빌고 싶은 게냐?”
요한은 마른침을 삼키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1992년 3월 8일생 윤마리입니다.”
“에잉… 쯧쯧쯧”
북두칠성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난 또 어린아이 수명 빌러 온 줄 알았더니,
다 큰 처자라니…
일 없다. 이것도 가져가라.”
그는 수저를 내려놓고 잔을 밀며 등을 돌렸다.
요한은 정자 위로 올라가 북두칠성 앞에 마주 앉았다.
“칠성 님, 사연만 일단 들어봐 주세요.”
“젊은이, 그 처자가 직접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정성이 없어서야…”
“지금 저승사자가 누나를 따라다니고 있어요.
괜히 돌아다니다가 잡혀갈까 봐,
제가 대신 온 거예요.”
정자에 걸터앉아 있던 태이는
괜히 돌멩이를 걷어차며 구시렁댔다.
“역시 늙은 신들은 말이 안 통해…”
요한은 태이 쪽을 보며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했다.
“허허허, 저 태귀 당돌한 거 보소.”
남두칠성이 코끝을 씰룩이며 북두칠성의 등을 툭 쳤다.
북두는 슬쩍 고개만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죽음의 신이야.
입 잘못 놀리면 지금 바로 황천길이야.”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태이는 턱을 치켜들며 코웃음을 쳤다.
그 말투에 북두의 미간이 꿈틀 했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요한이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앉혔다.
“아이고, 여기 뭉치신 거 봐.
제가 다 풀어드릴게요.”
태이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뒤집었다.
“진짜? 그렇게까지?”
“여기요? 여기도 뭉치셨네.”
“거기 밑에. 아니, 더 오른쪽.
좀 세게 두들겨 봐라.”
요한은 등이며 어깨며 쉴 틈 없이 누르고 두들겼다.
그런데도 젓가락질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수육 쌈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고,
막걸리 병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우린 이제 가봐야겠다.”
“봐라. 내가 저럴 줄 알았다.”
“태이야, 제발 쉿...”
두 칠성신은 스르르 자취를 감췄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태이가 요한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넌 정말… 배알도 없냐?
저 노인네들,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봐봐. 아까는 안 먹는다고 치우라고 해놓고선
고기도 술도 다 먹었어.
무슨 청주랑 떡은 싫다며?
그것도 싹 다 먹었잖아!”
그녀는 하늘을 향해 발길질하며 소리쳤다.
“식충이들! 먹었으면 먹은 값은 내놔야지!”
요한은 자신의 팔을 주무르며 태이에게 나긋하게 말했다.
“하룻밤 만에 될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도 안 했어.”
미소 짓는 요한을 보며,
태이는 씩씩거리던 입을 닫았다.
“그래도 얄밉잖아.
팔은 괜찮아?
아니, 도대체 안마를 얼마나 시키는 거야.
그럼, 최저시급이라도 달라고!”
다시 흥분한 태이가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요한은 그제야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너랑 같이 와서 다행이야.
하나도 안 힘들어.”
태이는 그 말에 잠시 숨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