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가르는 한 판

인큐버스의 의뢰 (9) – 칠성신의 시험

by 두부

14화


인사동 담을 지키고 있던 장승 대감은

멀리서 터덜터덜 다가오는 요한을 보자, 화들짝 달려 나왔다.


“요한아, 밤새 힘들었지?

어서 들어가서 쉬어라.”


“네, 역시 쉽게는 안 되네요.

눈 좀 붙일게요, 아저씨.”


장승은 요한의 뒷모습에 대고

슬쩍 한마디 던졌다.


“요한아, 기억나니?”


요한이 돌아봤다.

“네?”


“어릴 적, 너하고 내가 오목 내기한 거 말이다.

네 오목 실력은 나도 못 이기지...”


요한은 작게 미소 지었다.

“… 아무튼, 그냥 알려주시진 않지.”


그때 뒤따라오던 태이가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뭐? 오목? 갑자기?

혹시…

사실 난 천재였어...

뭐 이런 건 아니지?”


요한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오목을 잘 두는 건 아니고…”


“그럼 뭔데?”


요한은 뜸을 들이다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냥… 돌을 두기 직전엔

다들 마음이 잠시 출렁이거든.

그거 따라가면 돼.”


“…뭔 소리야?”


요한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태이는 기가 막혀서

“뭐냐고 진짜…”

하고 중얼거리며 뒤따라갔다.




자시.

요한과 태이는 다시 남산을 올랐다.


팔각정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정자 안에는 여전히 두 노인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요한과 태이는 조심스레

술과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오늘도,

노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요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르신들, 근데…

몇 년을 바둑만 두신 거예요?”


태이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이더니

“그 어색한 연기톤은 또 뭐야…”

낮게 내뱉고는 요한을 비스듬히 훑어봤다.


“전 이제 열여덟인데요,

오목에서 절 이긴 신은 아직 못 봤거든요.”


그 말에 북두칠성의 미간이 번쩍 치켜 올랐다.

남두칠성은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렸다.


“몇백, 몇천 년을 바둑만 두셨어도,

과연 절 이길 수 있을까요?”


쾅.

북두칠성이 바둑판을 내리쳤다.


“네 이놈!

이런 오만방자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그러면 나와 겨뤄보겠느냐?”


태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너무 전형적이야.

긁히는 것도 그렇고.

무슨 전래 동화 도깨비냐고.”


남두칠성은 요한과 북두를 구경하더니

스윽 태이 옆으로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지나도 저 노친네는 변하지 않네그려.

아가씨, 재밌는 구경 될 거요.”


요한은 북두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가 이기면…

윤마리의 수명을 늘려주는 겁니다.”


북두칠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좋다.

대신 네가 지면, 네 수명을 가져가겠다.”


“요한아!” 태이가 소리쳤지만,

요한은 태이에게 짧게 눈짓을 건네고

북두칠성이 내민 손을 잡았다.


“두말하기 없기예요.”




탁—


검은 돌이 바둑판 중앙에 내려앉았다.

북두칠성의 선공.

공격적인 출발이었다.


요한의 흰 돌이 대각선으로 따라붙었다.

누가 봐도 수비 중심.


둘의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북두의 돌 세 개가 일렬로 이어졌다.

요한은 하나하나 막느라 바빴다.


네 번째 돌이 놓일 찰나마다

요한의 돌이 먼저 내려앉았다.

흠잡을 데 없는 정확함이었다.


태이의 숨소리까지 잦아들었다.


“허허… 오랜만에 재미있군.”

남두가 중얼거렸다.


한참을 수비만 하던 요한이

딱 한 번, 공격적인 위치에 돌을 하나 두었다.

그러곤 다시 수비로 돌아갔다.


북두는 비웃듯,

“허술하군.”

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 순간—

북두의 돌이 좌측으로도 세 개, 위로도 세 개.

정렬되기 시작했다.


태이가 숨을 삼켰다.

“이건… 삼삼(33).”


북두의 눈매가 번갯불처럼 번뜩였다.

“아가씨, 훈수 두는 건 반칙이야.”


“반칙은 그쪽이 하잖아요.

삼삼은 금수라고요!”


말싸움이 엉키는 와중에도

요한은 반대편에 무심히 돌을 하나 내려놓았다.


탁.


그제야 보였다.

판 구석에

양옆이 열린 채

일렬로 자리하고 있던 흰 돌 세 알.


계속 방어만 하는 줄 알았던 그가

수비를 틈타 조용히 쌓아 올린 한 줄.


방금 내려놓은 돌로

사목이다.


정적만 흘렀다.

북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이내 북두는 고개를 떨구고,

바둑판 끝에 검은 돌을 하나 내려놓는 데 그쳤다.


요한은 마지막 돌을 집었다.


그리고—


탁.


다섯 개의 흰 돌.

오목.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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