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뜻 속에서 시작된, 성종의 첫걸음
어제는 짧은 시간 동안 왕이 되고 세상을 떠난 예종 이야기를 했었지?
오늘은 그다음 조선 임금님, 성종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몸이 약했던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궁궐은 큰 혼란에 빠졌어.
누가 다음 왕이 되어야 할까?
어제 이야기했던 구공신들 기억나지?
세조가 왕이 되도록 도와
나라의 큰 힘을 가진 신하들이었어.
그중에 한명회와 신숙주도 있었지.
바로 이 신숙주가 “새 왕을 빨리 세워야 합니다”하고 말했단다.
그래서 예종의 어머니이자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와 함께
다음 임금을 정하기로 했어.
예종에게는 제안군이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왕이 되기 힘들었지.
그래서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의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새 임금이 될지를 의논했단다.
결국 첫째 월산군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둘째 자을산군이 선택되었어.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해 사람들은 수군거렸지.
“정말 그게 이유일까?”
자을산군은 한명회의 딸과 이미 결혼한 사이였거든.
그래서 “한명회가 자기 사위를 왕으로 세운 게 아닐까?”
하는 말이 돌았단다.
기록에는 없지만, 그때도 그런 이야기가 많았대.
그렇게 열두 살의 자을산군이 왕위에 올랐어.
그가 바로 성종이야.
나이가 어려서 처음엔 할머니인 대왕대비 정희왕후가
나라의 일을 대신 맡았단다.
이걸 섭정, 즉 ‘왕 대신 나라를 돌보는 일’이라고 해.
정희왕후가 한 일은
손자인 임금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었어.
특히 성종의 숙부 구성군은 큰 공을 세운 인물이라
힘이 세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지.
그래서 혹시 왕위를 노릴까 걱정되어
멀리 유배를 보냈단다.
그리고 그 뒤로는 왕의 친척들이
나랏일을 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했어.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월산군과 제안군은
대군이 되었지만 조용히 살았어.
월산대군은 항상 겸손하고 조심했지.
제안군은 바보처럼 굴었다고도 해.
일부러 그렇게 연기했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라.
어쨌든 덕분에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어.
성종은 부드럽고 부지런한 임금이었어.
왕으로서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신하들의 말도 귀담아들었지.
하지만 할머니의 섭정은 쉽게 끝나지 않았단다.
왕이 된 지 다섯 해가 지나,
첫 왕비이자 한명회의 딸이 세상을 떠났지만
대왕대비는 여전히 나라의 일을 놓지 않았어.
아마 신하들의 눈치를 봤던 모양이야.
한명회의 딸이 죽자마자 섭정을 그만 두면
속이 보일까 봐 그랬겠지.
섭정을 맡고 있던 대왕대비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기도 했단다.
집집마다 신분표를 차게 하던 호패법이
백성들에게 너무 큰 짐이 된다고 여겨
그 제도를 없애버렸지.
그 덕분에 사람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단다.
그 사이 세조를 도왔던 훈구대신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어.
신숙주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대신들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그제야 성종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단다.
성인이 되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된 성종은
대신들의 힘을 경계했어.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던,
그러니까 궁궐에서 제일 힘이 셌던 신하, 한명회가
병을 이유로 물러나면서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단다.
세조가 아들 예종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었던
‘원상제,’ 즉 신하들이 왕과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제도도 성종이 없앴어.
이제는 임금이 나라의 일을 결정할 때였거든.
성종은 힘센 신하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한 임금이었단다.
세종대왕처럼 되고 싶었던 거야.
그즈음, 성종은 새 중전으로 윤 씨를 맞이했어.
성종의 나라는 점점 평화로워졌지만,
궁궐 안에서는 또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단다.
그 바람은 훗날 나라 전체를 흔들게 될 거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이만 코해야 할 것 같아.
흥미진진한 다음 이야기는 내일 이어 나가자꾸나.
잘 자요, 사랑하는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