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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밤 Dec 08. 2020

누구나의 삶

콧구멍 속 팅팅 불은 검정콩으로부터

"선생님 연재 오늘도 점심밥 안 먹었나요..?"...
 
"네.. 거의 안 먹었어요. 먹여주려고 해도 입을 꾹 다물고 전혀 안 먹으려고 하더라고요~ 김만 먹으려고 하고.. 결국에 나중에 원장님이 따로 조금 먹이셨어요.."
 
"오늘도요? 휴... 네.."


...
 
"어머니! 오늘 정우는 밥 진짜 잘 먹었어요~ 이만큼씩 퍼서 먹고, 반찬도 다 먹고 요즘 밥 정말 잘 먹어요~ 오늘 체육시간에도 너무 잘하고요~"
 

...
 
들리지만 안 듣고 싶고, 아무렇지 않고 싶지만 왠지 민망함에 연재 머리만 쓰다듬고 있었다. 한참을 신나는 칭찬을 쏟아내고 기분 좋게 듣고 있는 유치원 친구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의 대화가 오늘따라 참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바람도 차갑고..
 
연재는 왜 집에 안 가냐는 눈빛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손 잡아줘! 손 잡아줘!"


"어~ 그래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야지~ 잠깐만 기다리자..~"
 
오늘 하루의 유별났던 하원 풍경도 아니다.


"우와~ 정우 멋지네~ 이야.. 밥도 잘 먹는구나~"

평소 같았다면 같이 기분 좋게..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처럼 함께 추임새 넣어주고 웃어줬는데 오늘은 그냥 그렇게까지 하긴 싫었던 모양이다. 내 마음보가..
 
영화처럼 한 공간에서 나와 연재, 선생님과 정우엄마.. 물과 기름처럼 나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귀에서 웅웅거리듯 들리는데 내 귀에 비눗방울 하나 넣고 안 듣는 느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가는 기쁨에 폴짝거리는 연재의 손을 잡고 미소 지어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 쓰디쓴 기분 따위에 취해서 연재에게 절대 짜증 내지 말자..'
 

마음을 접고 접으며 다독여보지만 자꾸만 속상한 마음이 비집고 올라온다.


'바보같이 추운데 덜덜거리며 다 듣고 있지 말고 먼저 들어갈게요.라고 말할걸... 우리 애는 쫑알쫑알 그날 일 얘기 안 해주는데, 나도 좀 얘기해주지.. 해줄 얘기가 그렇게 없으신가..’


알고 있다. 선생님도 나쁜 의도가 아니셨고, 우리 연재가 얼마나 이해와 배려를 받으며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지도..
 
좋은 유치원을 만나 감사하고 마음 편히 보낼 수 있어 늘 다행스러운 마음. 늘 나도 진심이고 그렇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다행과 감사, 그로 인해 작아지는 내 마음이 참.. 싫다.
 
먹기 싫은 한약을 먹은 것처럼.. 참 쓰다..
 


어제는 저녁시간에 연재가 콧구멍을 자꾸 쑤시고 뭔가 답답해했다. 뭐가 들어갔나 싶어 걱정이 되었는데, 또 괜찮은 듯하다가.. 정확히 자기 상황을 아직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에게 짜증이 났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스마트폰 플래시를 콧구멍에 들이대고, 싫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 콧구멍에 콧물 흡입기를 넣고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셔보았다. 실패.. 다시 휴지를 대고 힘껏 흥! 코를 풀어보라고 강요도 해보았지만 아이는 괴로운지 울고불고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짐작할만한 단서도 하나 못 찾고 둘 다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얼마 뒤.. 연재의 콧구멍에서 검은 콧물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9시가 다 된 시간에 인근 지역의 24시간 진료 병원을 검색해서 차를 몰았다. 아이는 그 사이 차 안에서 잠들었다가 환한 불빛에 비몽사몽 깨어났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는 사이 의사 선생님은 콧구멍에서 잽싸게 무언가를 빼내셨다. 어른 손가락 한마디만큼 탱탱 불은 검은콩이었다.
 
기가.. 막혔다.


의사 선생님은 연재 진료를 보기 전에
"엊그제 어떤 아이는 궁금하다고 양쪽 콧구멍에 콩을 하나씩 넣어 왔었는데 너는 뭘 넣어갖고 온 거니~"라며 어디 한번 보자고 하셨다가, 진짜로 이만한 콩을 빼내시고는, "어이쿠 말이 씨가 됐네"
 
시원한 콧구멍으로 기분이 좋아진 연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콩 뺐더니 좋으냐는 나의 질문에 "네!!" 대답하고는 이내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병원에 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이 먼 곳에 있지 않아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 내가 가장 속상하고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갔던 이유는 단 하나.. "엄마~ 콧구멍에 콩이 들어갔어요~"라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아이에 대한 답답함과.. 그냥 뭐라 말하기 힘든 괴로운 기분이었다.
 
야근 후 회사 술자리가 있어서 미리 연락했던 남편은 상황을 전해 듣고 집으로 바로 왔고, 내 목소리가 너무 안 좋은 게 더 걸렸다고 했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괜히 트집을 잡고, 바가지를 조금 긁어버렸다. 이내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를 괴롭히는 마음이 무엇일까..
 
오늘 하원 마중 나갔던 일까지 더해지며
'나는 이런 때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결국,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또다시 올려놓은 욕심과 기대치에서
좌절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흔들리며 괴로워지고 마는 것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존감을 높여줘야 한다고 확신했지만, 순전히 엄마인 나의 기대치로 바라보고 '다른 또래 아이들이라면  정도는 말할  있는데  너는!!!'이라고 아이를 구석에 몰아붙였던 것이다.
 
나는 결국 '타인의 기준'이라는 무의미한 족쇄에서
날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려놓음의 완성은..
모든 내 관점에서의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는 마음이

아닐까.
 
나름 긍정적 주문을 핑계삼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무도 몰라~ 대기만성이라서 나중에 잘될 거야”

했던 말. 친정엄마나 혹은 아이를 아껴주는 누군가가 어린시절 부족해보이다가 반전의 업적을 이룬 위인들을 빗대어 "혹시 또 알아?" 하는 위로의 말들에 혹 하는 마음.
 
몽땅 다 버리자.
 
그런 마음들이 내 안에 있는 한,
 "대체 언제 잘될 건데? 언제 엄마 마음 시원하게 뻥 뚫어줄 건데?"라는 원망이 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가 순간 고개를 들고 독을 뿜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절망, 엄마를 슬프게 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문신처럼 뇌리에 깊이 새겨져 버릴지도 모른다.



어제의 쉽게 흔들리고 좌절했던 나를 본 덕분? 에
오늘의 쓰디쓴 느낌은 좀 더 쉽게 맑은 물로 희석시켜버릴 수 있었다.
 
손잡고 집으로 향하다가 인도에서 아이 눈을 마주보며 쪼그려 앉았다.


 "오늘 안 다치고 별 탈 없이 집에 돌아와 줘서 고마워~ 바람 불고 추운데도 씩씩하게 잘 놀다가 와서 정말 기특해!"


아이 손을 꼭 잡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톤의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같이 노래 부르고.. 마주 앉아 간식도 맛있게 먹고.
 
오늘 연재의 기분은 날아갈 듯해 보였다.
 
말로 청산유수처럼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 눈빛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고, 엄마의 섬세한 감정을 못 느끼는 게 아니거늘..


나는 또 자꾸만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어제 콧구멍 전쟁을 치를 때 아픈 건 저인데 대체 왜 엄마가 그리 서럽게 우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던 아이는, 눈물 가득 눈두덩이가 새빨개져 울먹이며 엄마의 젖은 눈을 바라보았다.
 
"엄마.. 토닥토닥... 엄마... 토닥토닥... 히잉~"
 
초조한 듯 엄마 어깨를 두드려주고, 엄마의 젖은 채 씰룩대는 얼굴을 만져주었다.
 
"엄마. 얼굴 찌푸리지 마~"
 
그리고..
 
"엄마 미안해요..."라고 처음으로..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순간,
그 엉엉 대던 와중에 그 한마디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울다가 웃어버려 엉덩이에 뿔이 날 뻔했다.
 
그래.. 너도 다 느끼고 아프구나.
우리 마음이 통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오늘 밤 잠이 들 때 아이에게 나지막이 이런저런 엄마의 마음을 진심 담아 이야기했다. 엄마가 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하겠노라고.. 엄마 아빠가 늘 곁에서 토닥토닥 응원해주고 사랑하겠노라고..


늘 하는 말.

엄마 아빠 아들이어서 정말 고맙다고...
 
잠이 들려고 눈을 껌벅.. 껌벅거리고 있던 연재는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며 그 보드랍고 작은 손으로
엄마의 뺨을 토닥토닥해주고 쓰다듬어주었다.
 
엄마 손을 확인하듯 다시 몇 번을 고쳐 잡고 잠든 아이를 보며, 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한동안 소리 죽여 어깨를 들썩여야 했다.



어제와 오늘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장담하거나 거만해지지 않을 밑밥은 두툼히 깔아가고 있다는 것..
 
아이의 변화에 즐거워 성급하게 들뜨는 마음이 올라온다 치면, 어찌 그리 알아채시고 내 양어깨를 무겁게 눌러 털썩 엉덩이 붙여 바닥에 앉게 하시는지...
내 다시는 쉽사리 일희일비 않고 가만히 그렇게 가겠소..라고 또 굳게 다짐을 하게 되고야 만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불행과 부족함이 가장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것은 누구나 적게는 한두 가지, 많게는 여러 가지의 마음의 짐을 저마다의 어깨에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좀 심하기도 해서 아니 저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했으면 저리 대대손손 무탈한가. 혹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헤어 나오기 힘든 고난을 이고 지고 가게 되었나. 이런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구시렁거리게도 하지만..
 
어쨌거나 양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다수의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정도의, 다만 각기 다른 종류의 짐과 행복을 어깨에 얹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보통이라 하는 다수의 테두리 안에서 그래도 한 번씩 웃을 수 있는 여유쯤은 가질 수 있다면, 그가 어깨에 진 삶의 무게가 무엇일지라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매사 남을 의식하고, 그 사람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행복에 전전긍긍하다면 삶이 짜증으로 가득 차는 것은 가속도가 아주 빨리 붙을 것이다.
 
내 삶은 이제 나 혼자가 아닌, 내 가족의 삶이기도 하기에..
 
모든 타에 의한 내 마음의 족쇄는 벗어 날려버리겠다. 그리고 내 가족과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작고 작은 행복들을 연재 콧구멍 속에서 팅팅 불어버렸던 깜장콩처럼 크게 크게 부풀리며 살아가겠다.




지금은 열한살이 된 첫째아이가 여섯살 무렵이던 시기에 기록해 두었던 일기입니다. 여전히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우리의 곁에서 애증의 존재로 우리가족을 울고 웃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특별한 보통날들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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