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에세이
춘분이라고 한다더군요. 오늘 같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을요. 모르고 지나갔으면 그냥 여느 어느 날과 같았을 텐데 괜히 알고 나니 특별한 하루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실상 같은데 말이죠.)
그러다 나에게 특별한 하루가 언제였을까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떠오르는 밤이 하나 있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한, 4년 전이었을까요. 지금 제 곁에 있는 평생 반려자와 훌쩍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역은 군산이었어요. 저는 그 도시를 처음 여행했었거든요. 다른 건 사실 조금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녁 무렵 들렸던 서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리서사' 였어요. 저는 서점을 좋아하고, 어느 여행지를 가든 그 지역의 서점은 꼭 방문하려고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습니다.
근데 그때는 이 남자랑 사귀기 전이라 그런 제 취향을 전혀 모를 때였거든요. 근데 세상에 저녁 무렵 그 서점을 데려가주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말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서점이래요.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하며 서점 안으로 들어가서 이런저런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서점에 머무는 30분가량 동안 저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본인 책에 전념하더라고요. 전 그게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사색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참 별거 아닌 잔잔한 저녁이었는데 왜인지 오늘 그날 저녁이 떠오르네요. 계절이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인생을 살다 보면 저런 드라마 같은 묘한 순간들이 또 오겠죠. 춘분과 같은 마음을 몽글거리게 하는 날들이 또 있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사색의 시간을 존중받은 것처럼요.
매일이 같고, 밤과 낮도 같은 것 같고. 그 길이가 똑같은 게 뭐가 대수라고 생각하면 뭐.. 그저 그런 하루가 되겠지만, 조금만 더 민첩하고 예민하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결코 여느 날과 같지 않은 날이 있으셨을 거예요.
제가 춘분을 핑계로 특별한 날을 떠올리듯 오늘 저녁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그런 날들을 떠올리며 잠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지금 당장 없어도 무방합니다. 곧 생길 거니까요!
그런 말 있잖아요.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다고요. 어두웠다면 밝아질 테고, 밝았다면 곧 어두워질 수도 있다고요. 근데 유난히 밤이 깊은 것 같았던 사람들에겐 희소식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낮이 밤보다 더 길어진다더라고요. 밤이 상대적으로 짧아진데요. 칠흑 같던 어둠 속에 있었던 것 같은 분들은 용기 내서 커튼을 켜보세요. 밝은 빛이 비칠 거예요. 그럼 그것만으로도 이미 특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