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단순하고 쓸모있는 글

 무슨 글을 쓰면 좋을꼬, 하고 생각을 해보다가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 중에 하나를 주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철학적인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 먹은 바와 달리, '철학'이라는 단어에 내가 품은 환상이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었다. 자기 비판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수용력이야말로 지혜이다.

 새로 일을 시작했다는 핑계로 글쓰기에서 등 돌리고 앉은지 두 어달이 지났다. 사실 기나긴 장편 소설과의 사투로 나가떨어진 뒤로, 소설로부터 멀어진 지는 어언 1년 6개월째. 한숨이 푹 쉬어지는 기간이다. 요새 노트북을 하나 장만해서 글을 쓰려고 들고 다닌다. 늘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 씀씀이는 큰지라 덜컥 할부로 끊어놓곤 새 장난감 만지는 설렘으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제대로 된 옷 한벌 사입지 않더라도 장비 욕심은 났나보다. 이제 간신히 생활고에서 저축하는 인생으로 변화하고 있는 와중에 큰 맘 먹고 사들인 과분한 노트북 앞에 앉아 신나게 타자를 치며 '타자감은 별로인데.'하고 새로 사귄 사람의 단점을 뜯어보듯 불평하고 있다. 노트북 이야기에 신이나서 잠시 딴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글을 쓰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려고 타자를 치고 있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책이다. 또 지혜와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읽은 책을 나열하며 감상만을 쓰고 싶지도 않고, 글귀를 전달하는 형태의 글쓰기로 책소개를 하고 싶은 목적도 없다. 게다가 애당초 주제를 정하고 방식을 정하면 자기 검열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서 쓰든, 에세이를 쓰든 개념치 않고 쓰려한다. 주제도 방식도 제한하지 않으련다. 처음엔 색깔이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란 생각을 했는데, 그런데 연연하는 애처로운 정신으론 글 자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다만 이왕이면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재밌든 재밌지 않든, 한 사람에게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점이 내 주제이자 구도이다. 여태껏은 그냥 두서 없이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는데 조금 자유롭게 '말을 거는 글'을 쓰련다.

 내가 지닌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 사람, 여성, 카톨릭, 사회인, 청년, 시민, 단체활동가, 봉사자, 가족-자매이자 딸, 친구이자 동료. 사실 나는 이 모든 정체성으로부터 생겨난 모든 혼란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어 글을 썼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도 또한 이 정체성으로부터 빚어진다. 모든 열등감, 희망, 괴로움으로부터. 순수한 애정과 숨막히는 두려움으로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 내 글을 읽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그런 사람을 상상하며 애정어린 마음을 담는다. 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을 실제로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 숨어 있지 않을때에,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느끼는 그런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