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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Apr 25. 2016

다시 하루를 바치며

처음 이런 글을 쓰려고 생각했던 때에 일상에서 새롭게 든 생각이나, 내가 바라본 풍경을 묘사하는 하나의 그림 같은 단순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번 글을 올린 뒤에 방향을 잃은 기분이 들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새로운 생각이나 풍경 따위는 없고 그냥 일기 뿐이다.


오늘은 책상 앞에 앉아서 주어진 자료 조사 업무를 계속했다. 밖은 아주 화창한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향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늘은 맑은데 미세먼지가 위험이란다, 하고 점심시간 식당가를 걸으며 떠들던 것이 기억났다. 점심에 밥을 잔뜩 먹었는데 늦은 오후가 되자 속이 불편했다. 저녁 무렵엔 어쩐지 앉아있는 일을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속이 체했는지 마음이 체했는지 괴롭기만 했다. 계속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자료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론 무슨 일을 언제까지 할지 계속 셈해보았다.

 오늘 노동청에 임금 체불 진정서를 보내기 위해 양식을 다운 받아 글을 썼다. 저번 회사에서 마지막 월급을 주지 않아 새로운 곳에 취직한 뒤에도 생활고에 시달렸다. 미디어에선 '임금 체불 증가해'라고 말한다. 또 '고등학생 수업비 미납액 증가해.'라고 보도하면서 '고의로 안내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을 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등학생의 부모와 고용주들이 고의로 돈을 안내는 고약한(?) 유행을 공유하고 있기라도 한 건지? 내 생각엔 임금 체불을 해서 월급을 못받은 부모가 수업비를 못내고, 수업비를 못 낼 지경이니 소비도 못하고, 소비를 못하니 회사가 돈을 못벌어 들여서 과장되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직원들(그러니까 부모들) 월급을 안주나보다.

 아마도 진정서에 글을 쓰고 신경을 쓰다보니 속이 좋지 않았던가보다. 일하고 있는 비영리단체가 월급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생활고에 시달릴 것만 같다. 어제 부모님 보험을 찾아보느라 늦게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 문득 생활비도 드리고 저축도 하면서 보험비도 납부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왜 굳이 미련하게 두 시간 동안 보험 상품을 찾아봤을까? 어제 읽은 가습기 세정제 사건 기사가 발단이었나보다. 사람은 가습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기사를 살펴보며 죽음이 두렵다기보단 가습기 때문에 가족의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이미 죽은 이를 돌이킬 수는 없는데 아무도 이 문제를 바로잡아 억울함을 해소해줄 사람조차 없는 지독한 외로움이 두려웠다.  

 수학여행을 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가습기 때문에 장애를 얻게된 가족의 치료비를 내기 위해 빚을 내고 간병을 위해 직장을 관둘 수도 있다.

 도처에 깔린 이 많은 위험에도 웃으며 살아간다. 걱정을 하고 희망을 갖고 함께 웃다가는 함께 눈물 짓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의 아픔을 어떻게 함께 나눠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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