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식탁 3. 유자 단무지
몇 년 전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동네의 새로 생긴 일식집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주문한 메뉴와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하나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반찬으로 나왔던 유자 단무지.
피클을 레몬과 함께 담그는 데에는 익숙해도 단무지를 유자와 함께 담근 건 생소했다. 아삭한 단무지와 함께 은은하고 달콤한 유자의 향이 퍼지는 게 새로움을 주었다. 가게는 조금 협소하고 번잡했지만 유자가 주는 향긋함 덕에, 요상하게도 차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유자와 무는 겨울의 재료고, 처음 음식을 맛본 것도 겨울이었기에 유자 단무지를 겨울의 음식으로 선정했지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겨울 음식이 고작 밑반찬이라니! 메인 메뉴도 아니고, 작은 종지에 딸려나온 몇 개 안되던 유자향 단무지가 당당히 겨울 메뉴에 올라간 건 참 재미있다. 대단한 음식도 아닌 흔하디 흔한 단무지.
지나치게 사소해서 소중하다. 가장 사소해서 기억에 남는다.
떠올려보면 유자 단무지 말고도 그런 것들이 삶에는 많이 남아있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건 몇십만원짜리 비싼 코트보다 정성을 들여 꾹꾹 눌러쓴 세 페이지짜리 편지, 밤새워 정리한 게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중학교 사회 노트, 여행에서 선물로 받은 조그마한 인형 키링.
소중한 것들은 어쩌면 작고 사소한 것들일지 모른다.
사소함을 떠올릴 때 네잎 클로버가 빠질 수 없다. 한 때 네잎 클로버가 크게 유행을 했다. 네잎 클로버를 눌러 말려서 책갈피로 만들거나 키링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가 많아졌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아마 다들 누군가의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네잎클로버 한 장을 사서 선물을 건넸을 것이다. 반대로,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사람들은 행운을 찾으려 풀밭을 마구 뒤지지만 사실 행복이 우리 곁에 많이 있다는 이야기.
뻔하지만 가슴에 남는 이야기다. 사실 네잎 클로버의 행운을 그렇게 찾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자 단무지부터 세잎 클로버까지,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이 대단하다 추켜 올려주는 것에 자연스레 눈과 마음이 다. '나도 그런 것들을 이뤄볼까?'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돈하려고 애쓴다.
작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을 더 많이 오랫동안 지켜봐주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내팽겨치고 지나치는 것들에 사실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봐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맞는 삶의 온도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가장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