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남는 이유는

겨울의 식탁 4. 귤단지

by 숨소하

겨울이 오면 가지는 나만의 전통이 있다. 바로 귤단지 만들기다. 별 건 아니고, 귤을 먹을 때 껍질을 윗부분만 살짝 까서 단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으로 귤을 쏙쏙 빼먹는 일종의 귀여운 놀이 (?) 다.


귤단지를 처음 알게 된 후로 나만의 작은 전통으로 만들어 매년 첫 귤을 먹을 때마다 빠짐없이 지키고 있다. 귤을 하나씩 빼먹으며 겨울이 빠르게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귤단지에 대해 처음 생각해 낸 건 (아쉽게도 내가 아니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이었다. 그 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것에 대해 나누는 굉장히 따뜻한 글이었다는 것만 생각난다. 댓글에서 누군가 사진과 함께 귤단지에 대해 설명해 줬다.

하루 중 읽은 아주 많은 댓글 중 하나였지만 유독 귤단지가 마음에 꽂혔다. 그 사람의 겨울 전통을 내 것으로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해 겨울부터 귤단지는 나의 새로운 전통으로 번졌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내 삶에 드러나 영향을 끼치곤 한다.


나의 수첩 중 '오르골'이라는 페이지가 있다. 아이유의 노래 <라일락>의 구절에서 따 온 단어다. 가장 소중하고 내 삶에 영화 같았던 순간이 생기면 서둘러 오르골 페이지에 상세하게 적어둔다.

그런데 오르골 페이지는 의외로 대단하지 않다. 물론 해외여행이나 첫사랑 같은 거창한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스의 길거리에서 본 오렌지 나무'나 '첫눈 오는 날 데크에 앉아 함께 보던 눈' 같은 일상과 같은 부분들이다.


사실은, 영화도 그렇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라고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순간에 어떤 배경음악이 깔리는지, 어떤 렌즈와 어떤 시각으로 담아내는지가 영화 같은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영화는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와 <비포 선라이즈>다. 둘 다 화려한 영화는 아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한 소녀의 일상을, 비포 선라이즈는 잘난 것 없는 허름한 차림의 두 남녀가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만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사소함을 찾아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귤단지의 사소함이 좋다. 사소한 데도 기억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사소해서 기억에 남았나 보다. 사소하기 때문에 더 정성을 기울여 기억해야 한다. 대단한 일들에는 기울일 필요 없는 기억의 정성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