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식탁 7. 따뜻한 물 한 잔
겨울에 가장 많이 먹게 되는 것이 뭘까? 수프, 차, 귤...생각을 이어가다 한 지점에 멈췄다. 따뜻한 물!
생각해보니 겨울에 가장 많이 먹게 되는 건 역시 따뜻한 물이다. 우리 집 창문은 (안타깝게도) 바람이 조금 들어오기에 아침이면 결로가 잔뜩 생긴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찬바람에도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조금 열고 자야 한다. 그렇게 찬 바람을 맞으며 자다보면 아무리 가습기를 틀어도 목이 쉽게 건조해진다. 덕분에 일어나자마자 귀찮음을 단숨에 이기고 갈라지는 목에 수분을 공급하러 침실을 떠날 수 있다.
나의 모닝 루틴은 간단하다. 먼저 방에서 나오자마자 티팟에 따뜻한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세수와 양치를 한다. 욕실에서 나오면 타이밍 좋게 물이 다 끓어있다. 서둘러 건조한 목에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밤새 떨어진 체온을 덮혀주고 목을 촉촉하게 해 준다. 또 밤새 쉰 위장에게도 따끈한 물 한 잔으로 아침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 물을 가지고 거실로 가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는 게 나의 아침 루틴.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물이 보약이다, 하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귀담아 들은 적은 없는데...실은 내가 이미 물을 잔뜩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물이 마시기 그렇게 힘들다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다. 물을 많이 마시는 병이라도 있는걸까? 무심코 나의 건강염려증이 또 나와버렸지만 그냥 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로 결론 짓고 넘어가겠다.
겨울의 따뜻한 물은 단순히 마시는 음료,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다. 겨울의 물이 담고 있는 맑음이 있다. 어쩐지 겨울의 서늘한 푸름이 통과된 것만 같은 맑음. 따뜻한 물 한 잔이 주는 포근한 온기. 겨울에는 어쩐지 물에게 위로를 받게 된다. 따뜻한 물이 몸을 타고 내려가며 주는 느낌은 때론 그 자체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언어의 한계를 담은 위로로는 마음을 안아줄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장 믿었던 사람조차 내게 더 이상 위안이 되어주지 못할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없을 때, 그저 온기만 담은 따뜻한 물 한 잔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
기분 상으로도,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구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거나 스마트폰으로 뇌를 가득 채우거나 친구와 끊임없이 수다를 떨곤 했다. 하지만 비워낼 수록 더 맑아지는 것들이 많았다. 과도한 폭식을 멈추고 공복에 물 한 잔을 채워넣을 때, 화려한 불빛들이 아닌 조용한 물 넘기는 소리에만 집중할 때 내 마음은 진정한 위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물 한 잔은 사실 내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허락해 주었다. 겨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마주하는 한 잔의 물이 어느 날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