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봄의 식탁 1 - 게살 크림 크로겟

by 숨소하

한 때 정말 좋아하던 웹툰 작품이 있었다. 제목은 <밥 먹고 갈래요?> 원체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 작품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완결이 난 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근한 그림체로 전하는 음식 이야기들을 잃지 못하고 다시 보고 있다.


계절의 식탁을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도 아마 이 작품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냥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포근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작품을 돌려보며 하게 되었다. 포근한 그림체 덕에 음식이 포근함으로 변한 것처럼, 나도 포근한 글을 쓴다면 나의 식탁에 올려진 음식들로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계절의 식탁을 연재하고 나서 내게 생긴 변화는, 다음 계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도 사계절을 전부 좋아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계절이 변하며 새로이 써내려갈 이야기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봄의 식탁에 올라갈 이야기들이 기대되어 이번 봄이 몹시 기다려졌다. 아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렇게 다음 계절, 다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되겠지.


살면서 점점 더 잘 느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먹고 싶어서 고른다고 생각했던 음식은 사실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항상 찾던 음식이었고,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날씨는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날씨였다. 바쁘게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나의 성격은 타인의 비난 때문이었고, 사랑한다 여겼던 사람은 우리 아빠를 닮아있었다.

쓰다보니 어쩐지 부정적인 영향만 나열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 있겠지.


게살 크림 크로켓이 그렇다. 만들기에도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고, 사실 난 느끼한 걸 싫어해서 힘들게 만들고 몇 개 먹지도 않는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을 뿐) 봄에 만들어 일 년 내내 냉동고에 모셔두고 살게 되는 녀석이지만, 게살 크림 크로켓을 만들지 않고 봄을 떠나보내기에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왜 게살 크림 크로켓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름 글을 적는 사람이고 늘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왜 내가 여기에 꽂혔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뭐, 아무리 돌아본다 해서 나의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조차 모르는 나의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밥 먹고 갈래요>에 나오는 <게살 크림 크로켓 화>는 사실...별 내용이 없다. 엄청난 스토리가 있는 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동을 주는 화도 아니고, 특별한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화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그 부분에 꽂힌 건, 그러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나는 별 거 아닌 그 부분에 빠져버린 죄로 매 봄마다 게살 크림 크로켓을 따라 만들고 있다.


시절 인연이라고 하나,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있다. 하지만 '시절 인연'들을 되돌아 보면 과연 시절 인연이라는 말로 가볍게 끝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나 싶다. 아무리 짧게 만났어도, 아무리 시절 인연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내게 남기고 간 커다란 흔적들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흔적이 나중에 가서 드러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후에 결정적인 사건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내게 오는 모든 사람들과 환경들을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시절 인연이 과연 내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말이다.


반대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내게 타인이 그런 존재로 남는다면 나도 타인에게 그런 인연이 된다는 뜻이니까. <밥 먹고 갈래요?>가 나를 위해 쓰인 작품은 아니지만 내게 따스한 존재가 된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미소를 짓고, 좋은 말을 하려 애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의 다정함이 닿아 있을까봐.


올 봄에도 역시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숨을 쉬게 되겠지. 잔뜩 새로움으로 가득찰 계절에 만들게 될 올해의 게살 크림 크로켓은 또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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