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식탁 2. 딸기청
늘 임시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함에 자꾸 어디론가 떠나려고 계획을 짜고, 떠나기 전엔 지금이 임시의 삶 같다. '떠나서 자유로운 기분으로 할 거야'를 계속 외치다가 막상 떠나서는 그곳이 또 돌아가기 전 임시 거점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돌아가서 할 거야'를 외친다. 원래의 제대로 된 삶은 어디에 가고 계속 준비하는 임시의 삶만 남아있게 된 걸까?
예전에는 내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똑같은 것에 쉽게 질려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았다. 늘 새로운 카페와 식당을 가는 탓에 단골 가게는 만들기가 힘들었고, 새로운 곳을 가서도 그중에서도 제일 독특해 보이는 새로운 도전하기를 즐겼다. 나쁜 성향이라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하나를 진득하니 하지 못한다는 점이 스스로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성실과 꾸준함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나에게 '쉽게 질린다'라는 건 나를 자책할 거리가 되었다. 단순히 카페 음료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는 모든 것에 질리고 말았다. 어쩌면 모든 것에 지쳐 있었는 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집, 입고 있는 옷, 나의 취향, 듣는 음악, 나의 외모, 주변 사람들까지도 전부 바꿔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기에 자꾸 떠나기 일쑤였다. 하다못해 3평도 되지 않는 방 구조를 매 계절 뜯어고쳤다. 옷장은 내 다 버리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내면에 무언가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기준이 너무 높았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이제는 쉬는 법도 잘 배워야 한다고. 한 번뿐인 인생 맛있는 건 다 먹어봐야 한다면서도 남들이 감탄할 만한 외모는 유지해야 하고, 여유롭게 살아야 하면서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미라클 모닝은 해야 한다는 세상의 기준을, 나는 어떻게든 따라가려 애썼다.
내가 모자라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노력을 덜 해서 못하는 거니까 나만 더 잘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힘을 주면 줄수록 모든 건 점점 더 꼬여만 갔다.
매 봄 딸기청을 담근다. 딸기청뿐만 아니라 매 계절 제철 과일로 청을 담그곤 한다.
왜 그랬을까? 어릴 적부터 늘 팬트리에 가지런히 정리된, 예쁜 유리병에 계절별 절임 음식을 모으는 사람을 동경하고는 했다. 보기에도 예뻐 보였지만 그런 삶, 나만의 계절이라는 흐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참 멋져 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끌린 건 그들은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갔기 때문일 텐데 결국 지나고 보니 나는 또 그들을 또 다른 기준 삼아 휘둘리고 있었다. 그들처럼 단정하게 살지 못하는 나를 비난했다. 세상의 기준에서 멀어져 단출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나를 또다시 원망했다.
지난봄 담근 딸기청은 1년이 지나도록 냉장고에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딸기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주 먹을 일이 없는데도 예쁜 병들에 차례대로 진열된 계절 냉장고를 만드는 데 힘을 썼다. 그래서 그런지, 청을 담글 땐 늘 귀찮고 힘들 뿐 기쁨이 없었다. 기쁨이 담겨있지 않은 음식에는 나도 모르게 손이 닿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번 봄엔 딸기청을 담그지 않기로 했다. 기쁨이 담기지 않은 계절 냉장고를 만드는 건 그 누구를 위한 일도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좋아하지 않는 딸기청을 만들기보다는, 나만의 질서가 담긴 계절을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