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따뜻한 기억

겨울의 식탁 6. 렌팅콩 수프

by 숨소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겨울, 대학을 입학하기 전 잠시 터키로 떠나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잠시 떠났던 터키에서의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처음에는 2주 정도 머물 계획을 짰지만, 주변의 권유로 나는 한 달 간 이스탄불의 2층 집에서 7명의 사람들과 함께 복닥거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던 이스탄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좁은 방 하나에 세 사람이 모여 바닥에서 자는 일이 많았고 매일 새벽에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는 피곤한 일정이 계속 되었다. 또 7명의 나이도, 성별도 다른 친분 없는 사람들과 지낸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터키는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고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었지만 터키에서의 한달 동안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렇게 터키에서 매일같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세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학교 기숙사에 산 적이 있다. 집은 너무 멀고 자취하기엔 돈이 부담이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기숙사에서 만난 룸메와는 어색했다. 좁은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고 흔한 냉장고 하나 없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돈이 아까워 매일 제공되는 샐러드 하나와 토마토 3개를 전자렌지에 삶아 먹으며 버텼다. 매일 가만히 침대에만 누워서 휴대폰을 했다. 수업만 끝나면 금방 돌아와 방 안에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터키에서의 좁은 창문으로 보였던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녘의 빛 한줄기와 다같이 차려먹던 건강한 아침이, 복잡스럽던 시장의 소리가, 부엌 창문으로 보이던 집 앞의 커다란 월계수 나무 한 그루가 그리워졌다. 기숙사에서 먹던 살짝 짭짤하고 따뜻한 토마토가, 들어가자마자 히터를 잔뜩 틀어 느껴지던 따뜻한 열기가, 커다란 창으로 보이던 높은 시계탑의 풍경이 어느새 그리워졌다.


렌틸콩 수프는 터키에서 참 많이 먹었던 음식이다. 아쉽게도 레시피는 알 수 없지만, 콩과 야채들을 불린 채 통째로 갈아 통후추와 올리브유를 뿌려 먹었던 따뜻한 아침이 기억난다. 처음 먹었을 땐 가득한 콩의 맛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리워진 맛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말을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그 말이 영혼 없는 위로로 들리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삶을 겪어보고 나니 거짓뿐인 말은 아니었나보다. 어른이 되는 건 역시 참 어렵다. 어른은 나름의 어른인 이유가 있다. 삶을 겪어봐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곁에 있을 땐 사라졌으면 좋겠는 시간들이 돌아보면 전부 따뜻한 기억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그 기억들이 나를 안아주기도 한다. 다 지나가니까, 지금의 순간을 좀 더 소중히 다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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