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여정」 독후감상문
이상,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산촌여정」 독후감상문
이상, 「산촌여정(山村餘情)」, 『매일신보』, 1935.9.27.-10.11. (『이상전집4 수필』, 권영민 엮음, 태학사, 2013. 수록)
이 작품 속에서 어떤 서사나 일관적인 주제 의식을 찾아내지 않기로 했다. 흘러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써내려간 글이라 느꼈고, 그렇게 읽었다. 다른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다른 감상을 찾을 수 있는데, 나는 그곳에서 이상의 순수를 엿볼 수 있었다.
내게 이상은 반항적인 작가였다. 언어가 아닌, 수식과 기호들로 문학을 표현해낸 그의 작품들을 몇몇 보며, 파격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기존 문학에 대한 거부이며, 오만한 태도, 파격으로 치장한 허세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동네 건달들이 이레즈미 문신을 하듯 글을 쓴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산촌여정(山村餘情)」을 읽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산촌의 풍경과 일상들의 묘사가 너무 아름다워서이다. 그의 표현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작은 생명과 자연, 일상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랑할 줄 아는 이의 표현은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훌륭한 작가라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의 조건은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오감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할 만큼 사랑하는 것, 이상은 「산촌여정(山村餘情)」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냈다.
그가 궁금해졌다. 왜 도시를 그리워할까, 그러면서 산촌에서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면 이미 글 속에 강조하며 담아두었을 테다. 그저 상상하거나, 나의 상황을 밀어넣어 볼 뿐이다.
나 역시 20살의 여름방학, 서울에서 본가가 있는 대구로 내려와 2달간 지낸 적 있다. 그때 참 많이도 지루하고 권태로웠다. 서울의 휘황찬란한 자극들에 비해 대구는 할 일도, 친구도 없이 늘 지겹고 똑같기만 했다. 설레는 일상이라곤 전혀 없었다. 매일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이나 영화만 돌려 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집 앞 산책을 떠난 적 있다. 그때 만난 거리에 앉아 나물 파는 할머니와, 단골 카페 사장님, 끈적한 노란 햇살과 푸른 잎들이 기억에 선연히 남아있다. 지겹기만 했던 일상이 꽤 사랑스럽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지겹고 포근한 일상에 대해 시를 썼었는데, 아마 이상이 이 작품을 써내려간 이유도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서울에 혼자 살며 대구의 온기를 그리워 하는 나처럼, 이상도 한 번쯤 그 산촌을 그리워했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의 어느 조각과 참 많이도 닮은 이상과 그의 작품들을 사랑스럽다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