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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의 Sep 25. 2023

권태로워도 괜찮아.

이상,  「권태」 독후감상문


권태로워도 괜찮아. 
: 이상, 「권태」 독후감상문

이상, 「권태(倦怠)」, 『조선일보』, 1937.5.4.-11. (『이상전집4 수필』, 권영민 엮음, 태학사, 2013. 수록)


대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 어두운 거실에 그림자처럼 누워 TV만 보시는 어머니를 동정한 적 있다. 당시 내가 본 어머니는 항상 무기력하게 누워만 계셨다. 나는 곧 대학이 있는 서울로 떠나고, 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도 회사며 약속이며 나름의 변화와 설렘을 찾아 가는데, 어머니만 권태의 무게에 짓눌려 재미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의 차가워진 발을 주무르며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옅은 목소리로 답하셨다.

“승학이랑, 도현이 잘 되고, 아빠랑 오순도순 행복한 거지.”

그 말에 나는 즉각적으로 따지듯 물었다.

“엄마, 엄마의 꿈에 왜 다른 사람을 포함하는 거야? 타인이 엄마의 꿈이 될 수는 없어.”

그리고, 다시 물었다. “엄마만의 꿈은 뭐야?”


하지만 당신은 잠이라도 든 것처럼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PORTRAIT OF THE PAINTER’S MOTHER


이제 와 생각하니 그때의 난 참 오만했다. 그런 숭고한 꿈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어머니는 하루하루 권태 속에 묻히어 가는 것이 아닌, 그 역시 삶의 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비록 반복될지언정, 어머니 역시 탁구 강사의 직업으로 살아가면서 일상 속 사명과 설렘을 갖고 살아가셨다. 나의 동정은 어리고 오만한 것이었다.


이상의 「권태(倦怠)」를 읽으며,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1. 화자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스스로도 권태라고 느낄까?
2. 권태가 나쁜 것인가?



1. 화자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스스로도 권태라고 느낄까?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내 답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매번 반복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갈지라도, 녹색이 녹색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듯,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그 이상의 숭고한 상상력과 은유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권태로워 보이는 형상일지라도, 그들 스스로는 권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가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이유, 방식들을 찾아가며,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권태라고 할 수 없다. 그건 화자의 상태가 투영된 결과일 뿐인 것이다. 권태 속에서도 권태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고독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숭고한 삶을 충실히 살아갈 뿐, 절대 잘못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2. 권태가 나쁜 것인가?


두 번째 물음, “권태가 나쁜 것인가?”에 대한 대답 역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다리던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뒤, 오랜 시간 방황하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왔다. 스스로 지겹고 의미가 없는 삶이라 느꼈으니 그것은 권태가 맞다.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 들 줄을 알고
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이상, 「권태(倦怠)」, 128면 중에서



이상의 표현처럼, 나 역시 불나비처럼 당장 죽더라도 불꽃에 뛰어든 시절이 있었다. 최근에는 뛰어들 불꽃을 잃고, 새로운 불꽃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매일 똑같은 날개짓만 했다. 참 권태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권태는 나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겨운 일상 속 나를 조금 더 가꿔보고자, 새벽에 헬스를 가고, 독서를 하고, 어려워서 포기했던 전공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권태가 ‘필요 이상의 여유’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면, 내게 주어진 모든 여유를 필요한 것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우리네 삶이 권태롭다 느껴진다면, 그 시간에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고, 다지고 가꾸어 보는 건 어떠한가. 그렇다면 권태는 더이상 위기가 아닌, 축복일 테다.

 


또한 권태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권태로운 삶이라 자각하며 살아가다보니, 새로운 불꽃을 끊임없이 찾아 다녔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새로운 불꽃은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 현재는 창업 강연회를 찾아 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찾고, 내 창업 아이템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깨달으며, 실천해가고 있다. 개발자들의 동아리에 가입하였으며, 새로 팀을 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중에 있다. 모두 ‘권태’ 덕분이다. 지난 여름 방학, 꿈도 없이 내 삶에서 가장 무료했던 시기에서도, 나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낸 바있다. 그렇듯 모든 권태의 순간에서, 나는 권태를 몰아낼 성장과 창조를 이룩해왔다. 이 작품의 화자가 작가인 이상, 본인이라 생각한다면, 당신 역시 권태를 몰아내기 위해 「권태(倦怠)」라는 위대한 작품을 써냈으니, 당신도 ‘권태’의 덕을 톡톡히 본 것 아닌가. 어쩌면 권태는 성장의 신호탄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방증인지도 모르겠다.

 


군대에서 한 선임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번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냐? 나는 뭘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해낼 의지도 없는 것 같은데…….”

이에 나는 단단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저도 게을러지고, 모든 게 귀찮아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다만, 그러다 다시 뭔가에 매달리게 되는 주기가 좀 짧을 뿐입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그래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없고, 무기력해지는 지점이 있다가도,
언젠가 다시 끓어 넘치게 되는 지점도 분명 올 겁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순환을 너무 초조하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덤덤히 기다리고, 쏟아낼 때는 있는 힘껏 쏟아낼 수 있다면 그 순환은 결국 우리네 삶을 더욱 더 고고한 위치로 끌어올려 줄 것이다.



이건 아직까지도 어리고 어리석은 김승학,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에곤실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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