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복덕방」 독후감상문
여전히 당신의 손 잡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
: 이태준, 「복덕방」 독후감상문
이태준, 「복덕방」, 『가마귀』, 한성도서, 1937.8. (『돌다리 외 – 이태준 전집2』, 강진호 외 엮음, 소명출판, 2015, 89~108면)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선 영웅이 되는 꿈 말이다. 세상을 뒤흔들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박수와 사랑을 받고, ‘당신이 제 아버지라서 자랑스럽습니다’와 같은 간지러운 말을 듣는- 그런 꿈.
안 초시 역시 그런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낡고 나약한 어른일 뿐이지만 한 번은 딸과 주변인들에게 영향력 있고,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테다. 안 초시는 그 수단으로 ‘돈’에 집착한다.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돈’이란 참으로 강력한 것이니 말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돈’ 뿐이라 여긴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그는 결국 실패했다. 마음이 굶주린 자들은 얕은 유혹에도 넘어가기 쉬운 법이다. 딸의 전재산까지 몰아 넣은 투자가 결국 사기였음을 알게 되자, 자신의 우둔함을 부정하듯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딸 경화는 ‘명예’란 말로 안 초시를 두 번 죽였고, 이기심과 위선으로 가득찬 장례식에서 희완 영감과 서 참의는 더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빠져 나온다. 그건 자발적으로 빠져 나온 것이지만, 아마 그들과 섞일 수 없다는 한계를 미리 느낀 탓일 것이다. 그들 역시 안 초시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사람들이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때 쓰셨던 일기장이라든가, 젊었던 할머니께서 스키니진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게 그들은 늘 멀리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도 주연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뭉클한 울림을 주었다.
누구나 밀려난다.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밀려온다. MZ세대와 XY세대 사이 간극과 갈등이 있듯 세력 다툼도 생기기 마련이고, 도태되고 소외되는 이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건 지구가 생기고 멸종과 진화의 형태로 답습해온 당연한 흐름이다.
다만 존재와 달리, 마음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듯, 그리고 내 사랑이 어머니를 닮아있고, 어머니의 사랑이 할머니의 사랑을 닮아있듯- 우리네 마음만은 영원히 그 시초의 향을 간직해갈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 이상을 좇아야하고, 그것을 아낌없이 선물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마음의 영역’에 있는 것들 말이다.
안 초시가 만약 무용수인 딸에게 돈 얘기가 아닌, “정말 아름다운 춤이었어,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안 초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텐데, 그 말을 딸에게 먼저 아낌없이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남을 먼저 칭찬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설령 그가 어떠한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가지게 될지라도, 어떠한 대우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건 빈 수레의 요란스러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준 만큼 돌려받는다. 그것이 물질이든, 무정함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위선과 차가움을 느꼈다면, 나는 상대에게 진실된 마음을 건넨 적 있었는지 고민해봐야할 테다.
복덕방 사람들의 결말이 쓸쓸하긴하지만, 그들이 밀려나는 상황에대해 섣불리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시대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도태되는 것도 하나의 도리일 테다. 자리를 내어주고, 다음 세대를 향해 응원과 사랑의 말을 먼저 전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이의 덕성이며, 밀려날지언정, 외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일 테다. 내가 여전히 할머니의 손 잡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 피부가 얼마나 시들었는지 따위는 상관없는 것처럼……. 그건 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시절, 그때 건네주셨던 당신 손의 온기를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