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의 Oct 01. 2023

사라지는 것들의 이유

이태준,「무연」독후감상문


사라지는 것들의 이유
: 이태준,「무연」독후감상문


이태준, 「무연」, 『돌다리』, 박문서관, 1943.12. (『돌다리 외 – 이태준 전집2』, 강진호 외 엮음, 소명출판, 2015, 256~269면)


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죽었다.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던 놈이었다. 피가 필요하다는 그 친구의 말에 당장 달려가 생에 처음으로 내 피를 전해준 적 있다. 비쩍 말라버린 그의 사진을 보며 온몸의 피가 마를 정도로 울었다. 그가 죽은 이후로도 꾸준히 헌혈을 한다. 누군가 조금 더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습관처럼 한다.


그가 죽은 이유는 혈액암 때문이다. 키우던 고슴도치가 죽은 이유는 추위와 배고픔 때문이었고, 옆집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고, 그 가족이 죽은 이유는 그의 죽음 때문이다. 친구의 아버지가 죽은 이유는 심장병 때문이고, 아버지의 친구가 죽은 이유는 교통사고 때문이며, 단골 문방구가 죽은 이유는 모르겠다. 그 모든 죽음을 괴로워하며 이유를 찾아 붙이다가 눈물이 먼저 말라버렸다. 그 모든 이유가 과연 진짜 이유가 맞기나 할까, 어쩌면 아무 이유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단지 그 시기만 다를 뿐이다. 양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도 당뇨나, 고혈압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럴 때가 되었을 뿐이다.




낚시를 하는 일은 기다리는 일이다. 「무연」에서는 그런 낚시꾼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생명을 낚아채는 때를 기다리는 일이며, 물고기에게는 죽을 때를 맞이하는 일이다. 그때만을 기다리며, 재촉까지 하는 다른 낚시꾼들을 피하는 화자는 그러한 죽음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인가보다. 그럼에도 낚고 끊기는 낚시로 비유되는 모든 일들을 즐기는 것을 보면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아는 사람이다. 사라져가는 ‘용못’과 이미 사라진 외가 같은 것들을 보며 한퇴지의 글을 되뇌이는 것처럼 말이다.


제목인 「무연」은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열거되는 대상들에대한 화자의 글이 개연성이 없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연’의 대상들은 공통점이 있다, 사라져가거나 사라져 버렸거나, 변해버린 것들이란 것. 작품에 등장하는 한퇴지의 글은 ‘모든 것엔 정해진 때가 없으니 오직 편한 대로 할 뿐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제목인 「무연」과 결합하여 생각해보면, 자연이든 사람이든 오고 가는 데 ‘이유가 없다’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는 더 이상 슬픈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하는 일이다.


새로운 세대가 밀려오고, 밀려나고, 잊히고 변하고 죽고 다시 피어나는 것,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는 것, 오늘도 내일도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그건 참으로 사무치게 아픈 성숙일 테다. 이태준 작가는 무연으로 개연되는 수필 형식의 글 속에서 무연의 진리를 피워낸 것이다. 


나도 나의 동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머니들과 친구들도, 그들의 가족들도, 집과 거리와 단골 가게들과, 동네와 추억들도 모두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테다. 그건 대세의 운행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거스를 수 없는 물살일 테다. 그럼 내가 고민해야할 것은 그들을 붙잡는 방법이 아니라, 밀려가기 전에 무엇을 남길까, 어떠한 마음, 어떠한 언어, 어떠한 가치를 남겨야만 할까. 어떤 기억을 물려주고 어떤 온기를 나눠주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당신의 손 잡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