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만든 건 (외 2편)

내가 사랑하는 나를 위하여

by 반한나
2021.10.14. 기억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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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갉아 먹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 속에

파묻혀 살며

느낀다.

나를 아프게 만든 건

윙윙- 날아다니는 벌레 떼가 아니라

그들에게 휘두르려다

스스로의 뺨을 때려버린

나의 손이었다.


그들은 나를 해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그럴 수 있다.



2021.10.14. 기억보관함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말이 줄었다. 웃음도 마찬가지. 이제 나는 가장 쉽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을 잊어버렸다.


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것 같다고, 무슨 일 있냐고 포대장님이 물으셨을 때, 나는 상담보다 잡담을 하고 싶었다. 근데 잡담을 하려고 하니 내 안의 문제들이 자꾸 와글와글 시끄럽게 난동을 피우길래 한 마디마다 10여 분의 진정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 못했다. 아, 안 한 건가? 어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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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과 웃음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어쩌면 그건 내 가치를 찾는 일이자, 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태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믿고 좋아해주는 민우의 농담에 같이 웃어주는 일, 우울을 숨기고 밝은 척이라도 하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고마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우울이 옮아버리면 어쩌지…. 그게 아니라도, 나를 감싸는 우울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훅-하고 놓아버리고 나를 떠나면 어쩌지…. 그게 무서워서라도 어서 투명한 웃음과 잡담을 찾아야 하는데 넓고 춥고 어두운 우울 속에 너무 깊이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하다….




2021.10.14. 기억보관함

그럼에도 고마운 일, 다행인 일은 많다.

내가 이렇게 펜을 쥔 것도 그것들에 대해 아로새기기 위해서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구름도 적당해 풍경이 생생했다.

◦오랜만에 자극을 주는 자기계발 서적을 찾아 읽었고,

◦3포 반장님도 포대장님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내 우울을 바라봐주셨다.

◦민우와 주호에게 농담을 치기도 했으며, 나름 쌍방향으로 웃음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내게 장난을 쳐주고,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는, 좋아해주는 민우에게 조금 오글거리는 대사로 고맙다고, 덕분에 내가 버틴다고도 전했다.

◦준성이와 내가 쓴 글에 대해서 깊은 얘기도 나누었고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내가 미워했던, 아니 어쩌면 질투했던 호현이가 내게 웃어주었다. 내가 먼저 웃고 그가 따라 더 크게 웃었다. 참 멋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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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갉아 먹으려 태어난 사람들은 어김없이 오늘도 충실하게 그렇게 살았다.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정을 줄 뻔했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혼자만의 우월 속에서 외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동현이와 별을 봤다. 벌써 별이 작년 겨울처럼 무수히, 선명히 피어있었다.


이 질퍽한 우울 속에서도 다행히, 또 당연히

아직 살아갈 이유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