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사서 고생중일까?

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3일차.

by 순례여행자

지난밤에 추위에 떠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일교차가 심한 4월의 날씨. 침낭에 몸을 꽁꽁 싸매고 이불을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아 라디에이터 앞에서 한동안 앉아있었다. 첫날의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느라 꽤 피곤했는데 잠도 설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새소리가 깨워주고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의 시작.

작은 시골마을이 주는 평온함과 마주하는 순간 안 좋았던 컨디션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시작부터 나를 설레게 하는 요소들을 계속 마주했다.

점점 이 길이 더 궁금해지고, 앞으로 만나게 될 마을들이 기대된다.

시골길을 오롯이 두발로 걷는 여행은 처음 해보는지라 나름 긴장을 했는데 이 길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을 걸어 놓은 느낌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고, 늘 인자하게 인사를 건넨다.

오르비고에서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잠시 다른 길로 들어섰더니 차를 타고 가던 할머니가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이 길이 아니라며 친절을 베푼다.

사실 이 길은 이정표가 사방곳곳에 잘 되어있어서 길을 잘못 들어설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잠시 풍경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자 다른 길 을 들어선 것 뿐인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도,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친절과 배려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 졌다.

정겨운 마을을 벗어나 흙 길을 걷는다. 고요한 아침의 시골길을 이렇게 걷는게 처음인 듯 하다. 지난밤의 피로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싱그러운 공기의 내음새에 심취해서 한참을 걸었다.

2시간정도 흘렀을까. 점점 태양열이 땅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지길이라 좋은데 이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그늘 한 점 없는 오늘의 길.

파란하늘이 예뻐서 연신 사진을 찍었는데 구름도 보이지 않는게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오늘길이 쉽다고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다.

저벅저벅 내 발자국소리만 들리고, 앞뒤를 돌아봐도 사람한명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 혼자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힘들지만 최대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게다가 어느 순간 핸드폰도 신호가 잡히지 않고 적응이 안됐다.

조용히 사색에 잠겨도 보고, 여유 있고 참 좋았는데..

아직 처음인지라 나는 이곳이 적응이 안됐나 보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걷다가 저 먼발치에 작은 집이 보였다. 순례자들을 위한 도네이션바였다. 삼삼오오 사람들도 모여 있고, 주인은 작은북을 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안도감과 행복감이 교차하는 순간. 이곳에서 제공해주는 과일과 물을 마시며 그간 힘겨웠던 마음을 위로 받는다.

한없이 반가운 순례자들과의 인사. 다행이다. 이 길 위에 나 혼자가 아니어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 길 위의 선물. 덕분에 나는 마지막까지 땡볕과 싸워가며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먹었던 과일들 중에서 그 어느때보다 달콤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잠시 쉼터를 제공해주는 그늘에게도 고맙고,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법한 작은 것들이 더 와 닿았던 순간이었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빠져나가고 오전내내 뜨거운 태양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지만 어제와는 또 다른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나간다.

힘겹게 도착한 아스트로가.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작은 도시, 며칠 이곳에서 묵어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평소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맥주 한 잔을 마셔보고 싶었다. 사실 술이 몸에 받지 않아서 왜 마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류인데,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오늘의 힘듦이 싹 내려갔다.

이래서 마시는구나.. 이 나이에 이제야 새삼 느끼는 생맥주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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