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2일차.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평소에 비 오는 날은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비에 옷이 젖는 것 조차도 싫어하는 나인데, 우비를 입고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시작부터 엄습해온다.
난생 처음 우비를 입고 1시간쯤 걸었을까.
지금껏 겪어보지 못햇던 발의 통증이 느껴졌다. 길들여지지 않은 등산화를 이틀동안 신고 장거리를 걸었으니 발가락들은 크고 작은 물집들이 생겼고, 혹시나 오늘 무리가 갈까봐 물집을 터뜨리고 그 위에 테이핑을 하고 나온 게 큰 실수였다. 테이핑과 두 겹으로 신은 양말에 발가락들이 짓눌려서 터뜨린 물집의 통증이 발등까지 뒤덮은 것이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이렇게도 걸어보고 저렇게도 걸어봤지만 결국 왼쪽발을 질질 끌며 절뚝거리면서 걷는게 최선이었다.
발이 괜찮은 건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빗줄기는 굵어지고 온통 산길, 돌길이어서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아픈데 의지할 곳도 없어서 더 슬프고 울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여기서 눈물까지 흘려버리면 몸이 더 힘들 것 같아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안간힘을 다해가며 꾸욱 누르며 걷는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질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게 답인가? 그걸로 부족하다.
끝날 때 쯤 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힘들고 슬픈 생각들만 머릿속에 꽉 차 있을 무렵 작은 마을이 나왔다.
굵어진 비를 피할 겸 작은 성당 앞에서 쭈그려 앉아서 신발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했다. 양말을 벗기도 힘들 정도의 통증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테이핑도 떼어버리고 압박이 덜 되는게 나을 듯 하여 발가락 양말도 벗었다. 비도 오고, 아프고, 힘들고..
이게 왜 사서 고생인건지.
서글퍼하고 있는 와중에 한껏 흥겨움에 취해 있는 할아버지 세분도 비를 피하려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너무 밝게 웃으며 인사하시는 순례자 프랑스 할아버지들.
“Are you ok?”
나의 안부를 묻는다. 그 말 한마디를 기다렸던 걸까.
장시간 홀로 힘든 마음과 싸우며 걸어왔는데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잠시 후 온갖 간식을 꺼내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먼 길을 걸을 수 있다며 건네 주셨다. 사실 힘들어서 말도 안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들의 좋은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등산도, 장거리 트레킹도 초보인 나에게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렵지만 간혹 만나는 사람들의 온정이 이 길에서는 큰 힘이 된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데도 다들 저렇게 걷다니..
저들도 걷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이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묵묵하게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였는데 산꼭대기에 집 몇 채만 보이는 오늘의 목적지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폰세바돈이 이렇게 산 위에 있는 줄도 몰랐고, 오르막길을 어찌나 올랐는지 비도 오는데 등산이라니. 오늘이 제일 힘든 날이겠지?
오늘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
혼자 걷는 사람도 간혹 보이지만 둘이 걷는 사람이 훨씬 많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부럽고, 홀로 더 힘을 내야해서 서글펐는데,.늘 남편과 붙어 다녀서 그런지 이제 혼자 있는게 부쩍 혼자 있는게 더 힘들었던 오늘 하루.
숨을 가프게 쉬며 정상까지 올라와서 빨리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그 힘든 와중에 빗소리와 새소리에 화음을 넣듯이 들려오는 워낭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바라보았다.
힘듦의 순간들이 한순간에 추억이 되어버리고 지금 내가 여기에 서서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자체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이 길은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