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답은 “별로 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입니다.
TV에서 우울증에 대한 얘기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이 나는 건 없지만,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라는 이야기는 기억이 난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니 그 얘기가 나는 참 아무렇게나 한 얘기 같다. 주변에 알리는 게 그렇게 쉽다고? 절대 쉽지 않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알릴 곳은 남편과 직장으로 정해뒀다. 이비인후과에 다니면서 “리보트릴”이라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먹은 적이 있다. 그때 약 후유증이 졸음과 무기력감이었는데, 하루에 두 번을 먹을 때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끼칠 정도였다. 그때 직장에는 알릴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을 때도 분명히 후유증이 있을 것이었고, 직장에 어떤 방식이든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애초에 정신과에 상담을 갈 때부터 얘기를 해 두었다. 덕분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을 먹게 되었다는 얘기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 발성장애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이 직장이다 보니,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고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을 때 두 분(지금 나 외에 두 분과 일하고 있다.) 모두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해주었다.
내가 우울증임을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두 곳. 내 아이들과 친정부모님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알게 되더라도 아이들과 부모님만큼은 모르셨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엄마가 우울증이었다는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우울해 보이지 않는 우울증이라지만, 시간 맞춰 약을 먹고 때로는 약 부작용 때문에 종일 무기력함에 빠져 보내는 나날들도 있다. 아이들이 그런 나날들을 엄마의 우울증 때문이라고 기억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화낼 일도 한번 더 참게 되고,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나를 점검하게 된다. 행여나 내 무기력감을 아이들에게 들켜버릴까 봐 때로는 무리하는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그게 나의 우울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부분은 아이들에 대함이다. 정신과 상담 때 얘기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도 알고 있다. 지금 내 상태에 그런 고민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소하루씨는 아프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대답하겠지…”제가 그건 내려놓지를 못하겠어요.”라며 쭈뼛댈 것이다.
아이들에 대함이 포기가 안 되는 부분이라면, 부모님에 대한 부분은 포기라기보다 어려운 부분이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절대 절대 알리고 싶지 않다. 내가 우울증이라면 나보다 더 더 우울해하고 나보다 더 아파하며 수시로 내 걱정만 할 엄마. 내게는 괜찮을 거다 얘기하고 태연한 척할 테지만 내 작은 태도에도 불안해하고 뭐라도 하나 더 해줄까 고민할 아빠. 그리고 내가 우울한 것이 행여나 본인들의 탓은 아닐까 고민할 두 분이다. 너무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이 알리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내 우울증은 누구의 탓이 아니다. 아직은 나의 우울증을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병에 걸렸을 때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건가? 나만 이러는 건가 싶지만, 나의 우울증은 나의 탓이다. 이러한 내 성격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모님이 본인들의 탓을 하지 않도록 내가 우울증이 다 낫고 나서도 발성장애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 모든 것이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모님만큼은 모르시도록 살아갈 것이다. 평생을 숨겨야 할지라도 말이다.
가족 말고도 지인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우울증임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발성장애임은 알리고 있지만, 그에 관한 약을 정신과에서 타다가 먹고 있음을 알릴 생각은 없다. 그 시선이 어떠한지를 알기에 알리고 싶지 않다. 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기 전에는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누군가가 우울증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면 그 사람의 예전 행동들을 상기하며 어느 부분에서 우울증 같았는지를 추측하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그 사람의 상황을 생각하며 어떠한 이유로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다는 추측 까지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시선으로 비치고 싶지 않다. 행여 모를 다른 사람에게 술안주 감이 되어주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도마 위에 두고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는 모습은 수없이도 보아 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의 우울증을 사람들에게 알리겠냐고 묻는다면,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되도록 숨길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