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물을 무서워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가 바다를 그리워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서점주인 C는 생각한다. '나의 엄마는 물고기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 읽은 이 문장을 C가 무심코 입 밖에 냈을 때 그녀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겨울, 은빛으로 눈부시던 바닷가에서였다.
C는 기왕에 내뱉은 문장을 이어갈 다음 말이 궁해서 머릿속을 헤집었다. 수영선수였던 엄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 C를 물속에 집어넣었던 이야기를 어느 기억의 방에서 찾아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그녀가 물었다. "조금 허우적대더니 물고기처럼 익숙하게 물속에서 놀더래."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가 물에 발이라도 담그는 걸 본 것은 물골이라는 마을에서였다. 여름이었고,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햇살은 뜨거웠으나 물은 차가웠다. 물이 맑아서 개울 바닥의 돌까지 투명하게 보였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C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건 C쪽이었고, 그녀는 듣는 쪽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C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을 땐 주의 깊게 들었지만 기억에 담아 두지는 않는 것 같았다. 했던 얘기를 또 해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들어주었고 C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물에 발을 담근 그 날 그녀는 첫 번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늘처럼 햇살이 밝은 날이었어. 한옥 집의 뒷마당이었는데,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우물이 있었지. 누군가 은색 양은 대야에 우물물을 부었어. 햇살이 물에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어. 손을 담갔는데 얼음처럼 차가웠지. 물이 어찌나 투명하게 빛나던지 눈이 부셨어. 얼굴에 닿는 물의 느낌이 좋았어. 어찌나 차갑던지 내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 같았어."
기억은 실재가 아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기억으로 돌아갈 때마다 이야기의 구성요소나 색채,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해도 기억이 잘못됐다거나 기억을 못하는구나 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녀의 첫 번째 기억 이야기를 듣는 것을 C는 좋아했다. 그것이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C는 그녀야말로 물에서 도망쳐 나온 물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만난 지 1년이 되는 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녀가 늘 불안했기 때문에, 생일 보다는 만난 지 1년 되는 느낌이 더 각별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우주만화>와 화분 하나를 선물로 준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테이블이 딱 하나 있다는 식당을 예약해두고 그날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좀 남아서 책을 펼쳤다. '물고기 할아버지...이제는 물속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늙은 크프우프크는 회상했다. 성큼성큼 걸어 다니기로 결정을 내리는 자들이 더욱더 늘어났으며, 자기 친척들 중 누구라도 저 마른 땅에서 살지 않는 가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식당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손님 한 분은 아직 안 오셨군요."
책을 읽는 사이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난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젊은 크프우프크의 그녀는 ‘호수를 향해 몸통을 기울였다가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니었어요.’ 약속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났고 C의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생일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C는 생각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가 물로 돌아갔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C는 하나 밖에 없는 테이블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전자명령으로 전환된 <나>라는 단어와 <프리실라>라는 단어는 지금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