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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핑크 맛을 즐겨요

<<와인>> 파스쿠아 스위트 로제

by 빛나는

핑크에 환장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의 주변은 온통 핑크빛. 손에 쥔 볼펜부터 발에 신은 슬리퍼까지 같은 색깔이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치장하고 나타난 적도 있었다. 어디를 가든 핑크가 보이면 무조건 산다. 그게 무엇이든.


결혼식에서는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어쩔 수 없이 흰 드레스를 입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옷 대신 진한 핑크 부케를 들고 뾰로통하게 앉아 있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가장 즐거워야 할 날에 핑크를 못 입어 죽상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녀는 포기를 몰랐다. 피로연장에서 빛나는 핑크 드레스로 갈아입고 보란 듯이 등장했다. 나와 함께 앉아있던 친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심이 담긴 큰 박수를 보냈다. 존경한다 너!


술은 입에도 못 대는 그녀가 그저 병이 예쁘다며 모임에 와인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역시나 포장지부터 핑크, 잔에 따라 나오는 빛깔도 핑크. 마치 향까지 핑크인 것 같았다. 한 모금 마셔보니 의외로 맛있었다. 달지 않은 핑크빛 액체가 입안에 맴도는 게 꽤 괜찮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끄고 맛 표현을 기대하는 그녀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이게 뭐야, 핑크 맛이잖아!”

순간 주변은 웃음바다가 됐다. 핑크녀의 와인을 시작으로 온갖 추억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할 때 흰 옷을 입고 울상을 지었던 것은 두고두고 안주거리였다. 넌 꼭 딸을 낳아야 한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온 우주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말로 진짜로 딸을 낳았다!


그녀가 핑크색 배냇저고리를 입힌 아기 사진을 보내왔을 때, 우리는 또 유쾌하게 웃었다. 아들을 낳았어도 핑크를 입혔을 거라며 우스갯소리도 했다. 아기 방을 어떻게 꾸몄을지 안 봐도 뻔했다. 또 골려주러 놀러 가야겠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축복아, 이모가 곧 핑크옷 잔뜩 사갈게, 물론 너의 엄마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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