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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잔만

#정윤작가님 소설반 글쓰기 숙제 - 6 (간결하게 글쓰기)

by 빛나는

[엄마]를 주제로 간결하게 글쓰기 (1000~1500자 내외)




기어코 엄마의 오른쪽 어깨는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숟갈도 제대로 들지 못해서 왼손이 오른손을 도와야만 겨우 한술 뜰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정리했다. 저리 움직이니 괜찮을 리가 없지. 마음속 생각이 튀어나왔다.


엄마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할아버지 댁에 갔다. 차로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길이 조금 막히기라도 하면 이동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나는 엄마가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는 게 걱정이 되었다. 혼자서 가족 모두를 끌어안으려는 모습도 안쓰러웠다. 요양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의 치료 일정을 관리했고, 홀로 집에 계신 할아버지의 식사를 챙겼다. 틈틈이 손주들까지 봐주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등에 파스를 줄줄이 붙이고, 가벼운 반찬 통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할 때도 많았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 이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냐며 매정한 소리를 내뱉어 보기도 했만, 엄마의 엄마에게 흘러가는 사랑은 막을 길이 없었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려 두 개의 컵을 꺼냈다. 주방에 있는 기계에 올려두고 블랙커피 버튼을 눌렀다. 진한 향이 번지는 걸 보며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달콤한 믹스커피를 찾는 눈치였다. 나는 단호한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당뇨 때문에 매일 약을 한 움큼이나 먹으면서 단 커피를 찾는다니. 설탕이 얼마나 나쁜지 또다시 설명하려고 입을 여는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딱 한 잔만!”

검지를 들고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엄마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요즘, 엄마의 하루에는 남을 돌보는 일만 가득했다. 엄마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 것도 당수치를 계산하며 주저했다. 가만히 누워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던 날이 언제였을지. 유난히 지쳐 보였던 오늘, 엄마의 마음에도 잠깐의 위로가 필요한 때 같았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귀여운 거짓말을 하며 믹스커피 봉지를 뜯었다. 새 유리잔에 끓는 물을 넣고 알갱이를 녹여 큼지막한 얼음을 들이부었다. 내가 커피를 휘저을 때마다 엄마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곧바로 한 모금 들이켜더니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뜨거운 가슴을 식혀주는 한 잔으로 잠시라도 고단함에서 벗어났을까. 자유로운 그 표정을 보며 나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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