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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Apr 25. 2020

고무신에 무너진 꽃신의 자존심

좌판 위에 올려놓은 꽃신을 팔던 꽃신장이의 무너지던 자존심을 생각하다

다들 이야기한다.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그 말보다 더 가슴 철렁대는 예측이 또 있을까? 운동경기가 취소되고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식당이 문을 닫아야 하며 학생들은 사람이 아닌 화면을 통해 사회를 배우게 됐다. 사람과의 접촉 없이도 사회성을 배울 수가 있기는 한 걸까? 물리적 거리든 공간의 변화이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업종지도가 그려질 거라는 전망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가 위축되면 제일 먼저 외면 받는 업종은 문화예술계다. 유명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해온 영국의 뮤지컬 배우 제니퍼 햅번이 코로나로 무대에 설수 없게 되자 마트 점원으로 취업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결혼식을 누비던 사진사도 카메라 대신 트럭에서 채소를 싣고 내리는 일로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전 세계인 중 10명의 노동자 중 8명이 실직을 하거나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소리 없는 변화에 김용익의 단편소설 ‘꽃신’이 생각났다.

 자신의 딸을 좋아했던 아들이 백정 집안의 자식이라 딸을 줄 수 없다고 반대했던 고집스런 꽃신장이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다. 


값이 싼 고무신이 대량으로 생산되자 손끝으로 일일이 다듬어 만든 꽃신은 비싸다고 외면당하게 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농부들이 피난을 가느라 헐값에 내놓은 소를 사들여 돈을 벌게 된 주인공 상도는 햅쌀을 사러 장터에 갔다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했던 꽃신장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꽃신을 헐값에 절대 팔 수 없다는 완고한 갖바치의 고집과 폭격으로 죽게 된 신발 집 딸의 죽음은 꽃신만큼이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떤 업종은 사라지고 어떤 직종은 대박을 터뜨리는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영향권에 놓이게 된 현상에 대해 대지진에 버금가는 사회변동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고 있다. 굳이 전문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등장한 아마존은 사람들의 쇼핑 트렌드를 바꿔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방식이 미덥지 않다. 얼마 전에 앱 사진만 보고 산 구두를 반품을 했다가 2주가 넘도록 돈이 입금이 되지 않아 진땀을 뺐기 때문이다. 내가 인정하든 안하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건을 들고 층계를 오르내리는 배달원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1000만이던 방문자가 3개월 만에 일 억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는 ZOOM이 호황을 누리고 '원격진료'라는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게 된 이 모두가 사회적 격리가 빚어낸 업종들이다.


 흔히들 미래에 많은 직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도 예술인은 대체할 수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지 못한다면 문화예술업계도 어느 분야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지 않을까. 


좌판 위에 올려놓은 꽃신을 팔던 꽃신장이의 무너지던 자존심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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