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소희 Jun 12. 2020

염치를 안다는 것

가르침도 염치를 아는 사람에게나 통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해마다 수원시는 대전 현충원 가는 유족들을 위해 버스를 제공한다. 나와 모친은 돗자리를 챙겨들고 지정된 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윽고 관광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두 자리가 비어있는 좌석은 없었다. 마침 두 남자가 창가 쪽에 한 자리씩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서 “모친과 함께 앉고 싶으니 뒤로 옮겨줄 수 있겠냐”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도 남자는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뒷좌석으로 옮겼다. 나는 모친과 함께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화가 끊어지면 또 다시 통화가 이어졌다. 위협적이거나 거의 욕에 가까운 언어였다.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거친 통화는 계속 됐다.

휴게소에서 버스는 잠시 멈췄고 화장실이 급한 일부 승객과 그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 남자가 내리자마자 버스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 사내에 대해 한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전화통화의 장본인은 바로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로 옮긴 남자였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이번엔 그 남자는 좌석에서 일어서서 아예 운전사 옆으로 다가갔다. 자신이 지름길을 안다는 것이다. 언제나 현충원 입구에 도착하면 밀려드는 차량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걸 참을 수 없었는지 남자는 운전기사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수원에서 대전까지 도착하는 동안 아무도 그의 거친 언행과 행동을 제지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유족을 실은 버스에 합승했다면 분명 그도 유족의 일원이고 그의 가족 누군가 현충원에 안장되어있을 텐데 자신의 지금 어떤 결례를 범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공자의 가르침이 맞는 지도 모르겠다.


 제자들과 공자들이 길을 걷고 있는 데 한 사내가 대로변에서 큰일을 보고 있었다. 공자일행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쳤다. 얼마쯤 걷고 있는데 또 다른 남자가 구석진 곳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공자가 사내에게 야단을 쳤다. 그것을 본 제자들이 의아하게 생각을 하며 공자에게 질문을 했다.

 “공자님, 아까 길 가운데에서 똥을 싸고 있는 남자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면서 왜 구석진 자리에서 오줌을 누는 저 사내에게만 뭐라고 나무라시는 겁니까?”


 “저 구석진 자리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은 염치를 아는 놈이다. 하지만 도로 한 가운데서서 볼일을 보는 놈은 자기가 하는 일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이라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 가르침도 염치를 아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법이다.”


 조지 프로이드의 죽음으로 경찰의 공권력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상점을 부수고 물건들을 약탈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의 색깔이 의심스러웠다.


선조의 명예를 더럽힌다는 생각조차 없는 후손의 무례함이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인권을 지키고 싶어 하는 범죄자들의 뻔뻔함에 동정을 쏟아야 할지 다시금 생각게 하는 요즈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