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흔하지 않은 날이지만 돌풍이 불던 다음 날,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설마하니 벌써 겨울이 왔다간 건 아니겠지?
겨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계절 위에 사는 나는 찬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마음은 벌써부터 바람을 따라 치닫곤 한다. 그리움이 얼음처럼 천천히 가슴 안으로 녹아내리고 왈칵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면 나는 제니스 이언의 'Stars'를 몇 번씩 듣고 또 듣는다.
그녀의 노래는 겨울을 닮았다.‘At seventeen' 이란 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는 그녀의 노래 가운데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통기타의 선율을 듣고 있자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어느 겨울의 시간 앞에 어른거리는 나를 보곤 한다.
외할머니집의 연탄아궁이에 걸어놓은 양은솥에는 언제나 물이 설설 끓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면 외할머니와 나는 부뚜막에 앉아 꽁꽁 언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곤 했다. 김장독에서 갓 꺼낸 김치 한 포기를 썰지도 않고 손으로 쭉쭉 찢어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던 외할머니의 굵은 손마디는 저편으로 사라진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시계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킬 때쯤 외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광속에 파묻어둔 고구마를 꺼내 쪄주시곤 했었다. 뜨거운 고구마를 젓가락에 꽂아 껍질을 벗기면 들창으로 깊숙이 들어온 햇살에 고구마는 노랗고 말간 속을 드러냈다. 밖에서 노느라 찬바람에 시달린 언 가슴은 한 입 베어 문 고구마조각에 금방 풀어져서 꾸벅꾸벅 졸기 일 수였다. 김이 오르는 솥뚜껑 위에 곱은 손을 녹일 수 있었던 겨울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 시절의 겨울은 따뜻한 아랫목처럼 나른했고 평화로웠기에.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겨울처럼 깊어갔다. 우묵한 겨울바람에 가난한 이들은 어깨를 펼 줄 몰랐고 어른들의 한숨소리는 내 가슴에도 머물렀다. 공연히 나는 학교가 끝난 후에 친구 집을 배회하곤 했는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은 왜 그리 길고 처량했던지. 전등불이 비추는 회색 시멘트 담벼락 밑에서 한참을 내 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근심으로 주름진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싫어 한참을 집밖에서 서성거렸던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하늘 가득 반짝 거리는 별들을 현실 위에 군림하는 이상처럼 여겨졌었다. 그 별들 아래 서있는 내 모습은 어찌나 볼품없던지, 그 시절의 겨울은 어두웠고 무거웠다.
가끔씩 야외 미술전시회가 열리던 경기도에 있는 대성리를 찾았다. 모두가 죽어버린 계절, 야외에 전시된 가공물 위에 쏟아지는 겨울 햇살은 눈이 부셨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에 마음이 놓이고 입 안 가득 들어오는 찬 공기는 근심으로 찌든 나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졸업과 입학이 번갈아가며 치러지던 겨울 내내 별들이 지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이젠 나도 어른처럼 깊은 한숨을 내쉰다. 세상은 결코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로 생긴 버릇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찬바람이 불면 꿈을 찾아 들판을 쏘다녔던 젊은 시절의 방황과 절망이 그리워지는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