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늙어갔다. 외할머니처럼. 숱 없는 머리카락이 부수수 일어난 뒷모습은 영락없는 외할머니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콧잔등에 분칠을 하지 않으면 시장에도 안 가셨던 사치스런 외할머니와 달리 엄마는 치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맨손으로 시멘트를 이겨 갈라진 벽 틈을 메우기를 마다하지 않던 엄마는 외가댁에 가서도 언제나 부엌에만 있었다. 방안에 모여 앉아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 보이며 남편 자랑, 자식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는 이모들. 그 뒷전에서 뻘쭘하게 웃기만 하던 울 엄마의 가슴에 어떤 절망이 있는지 알 턱이 없는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버릇없는 자식에 불과했다.
교회 가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옷 한 번 제대로 갖춰 입질 못하고 교회에 가야 했다. 추레한 옷차림에 집에서 신던 슬리퍼를 신고 교회 뒷좌석에서 존재감도 없이 예배를 보았던 엄마의 간절함 속에 나의 미래가 있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나 혼자 잘나고 똑똑한 자식이었다.
큰 남동생이 뇌막염이 걸려 뇌성마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의사진단에 몇날 며칠을 차가운 교회 마룻바닥에서 허리를 펼 줄 몰랐던 울 엄마. 공부 잘했던 둘째 남동생이 카츄사 시험에 떨어지자 국방부까지 찾아가서 기어코 영어점수를 확인했던 울 엄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의 손을 끌고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취직부탁을 했던 울 엄마는 자신의 체면보다는 자식의 장래가 우선이었다.
자식 돌보느라 자신의 삶은 구멍 뚫린 양말만큼이나 초라해졌는데도 대가를 바라지 않던 울 엄마. 이를 악물지 않으면 달아나고 싶은 그 시간들을 자식에게 발목 잡힌 울 엄마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비가 오면 영락없이 우산을 챙겨들고 교실 복도 유리창너머로 내 이름을 뻐금거리며 손을 흔들고 계셨던 엄마에게 나는 왜 그리 모질고 매정한 딸이었던지.
삼남매가 싸들고 가는 도시락반찬을 챙기는 일도, 하루 삼시 세끼 밥상에 올라가는 국과 반찬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강한 의지력을 요구하는 일인지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 고마워요. 그 한 마디가 뭐 그리 쑥스럽다고 아직 입 밖으로 내뱉지를 못하는 건지.
스물여섯에 대학 간다고 막무가내로 직장을 그만 둔 고집 센 딸을 위해 길을 걷다가도 가던 길을 멈추고 눈물로 기도를 했던 울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훌륭한 작가가 되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이 회한으로 가슴에 사무친다.‘부모 복이 없으면 남편 복도 없다’며 빛바랜 여고시절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엄마의 독백을 위로해주진 못할망정 엄마처럼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오히려 엄마를 몰아세웠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 정말로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