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교시절 물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물리 첫시간에 배웠던 ‘질량보존의 법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소와 원자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도 그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도무지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모양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무게가 같을 수가 있지? 얼음이 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어떤 입자는 슬쩍 공중으로 사라진 것도 있을 텐데 어째서 무게가 같다고 하는 건지….’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질량보존의 법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 왈.
토 달지 말고 그냥 외워.
어쨌든 의문으로 끝난 첫 물리시간은 나로 하여금 졸업할 때까지 물리와는 담을 쌓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에 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했던 특정의 과목은 늘 80점 이상이었다.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싫은 것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물리과목 때문에 어긋났던 성적으로 인해 나는 나만의 시간 열차를 타고 즐겼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그들을 따라잡기란 달나라에 가는 거라고 여겼다. 이왕 망가진 성적이니 점수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어서 급기야 아주 엉뚱한 발상을 했다.
‘어차피 일등을 하지 못할 거라면 한 번 꼴등이 되어보자.’
중간고사 때였을 것이다. 나는 실험삼아 시험을 치렀다. 낄낄 거리며 어떤 과목은 아예 문제를 읽지도 않고 답안지를 작성하고 사지선다형 문제는 한 가지 번호만 들입다 기입했다. 드디어 성적표를 받게 되던 날, 허걱! 이게 뭐야?
성적표를 받아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꼴등이 되겠다고 엉터리로 시험을 봤는데도 내 밑에 2명이 더 있는 것이 아닌가. 우째 이런 일이.
‘일등하기도 힘들지만 꼴등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생각이 깊어졌다. 사람마다 노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이 있는 거라고 여기게 됐다.
어쩌면 인생의 낙오자도 정해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실패자인지 알려면 뭐든지 도전해봐야 한다고 여겼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일단은 열정으로 살아가는 게 옳다는 정답을 갖게 된 것이다.
과학의 질량보존의 법칙은 몰라도 인생의 질량보존의 법칙을 깨달은 나는 26살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38살에 학사모를 쓰게 되었다. 돈암동 S대를 졸업한 나는 봉천동 S대 출신을 만나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일탈을 꿈꾸는 나의 열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필이 꽂히면 곧바로 몰입한다. 한 번은 리듬 비트에 열병을 앓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음악만 들으면 다른 사운드는 들리지 않고 리듬 비트만 내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드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드럼 스틱과 교본을 사고 열심히 드럼을 배우러 다녔었다. 그러나 드럼은 특성상 다른 악기와 어울려야 그 맛이 살아나기에 하는 수 없이 중도에 접어야 했다. 연필꽂이에 꽂혀있는 그 드럼 스틱은 가끔 가려운 등을 긁을 때 사용하긴 하지만 여전히 드럼은 내게 매력적이다.
‘나’라는 인생질량의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된다. 나이 때문에 주저앉거나 세상 눈치 보느라 망설이지 말고 무제한으로 주어진 생각의 들판에서 뛰어놀아야 한다. 생각은 곧 현실로 나타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