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독박골이 어딘가요?

뱀 바위에 얹혀살던 사람들은 죄가 뭔지도 몰랐다.

by 권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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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공 한 가운데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허공. 시선의 시작은 푸른 하늘이었고 끝은 구름이었다. 하늘과 구름이 만나는 무한한 경계를 지나가며 느긋하게 긴장 풀린 시선으로 주름진 산맥을 내려다보았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푸른 바다는 무한했다. 달그락거리며 브로콜리와 쇠고기 볶음을 먹고 후식으로 제공된 커피를 마셨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구름은 맨발로 뛰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엄마가 떠올랐다. 솜을 틀어 두툼하게 만든 후 빳빳하게 풀 먹인 이불호청을 무명실로 꿰매던 엄마의 모습은 해마다 가을이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메주콩을 쑤어 고추장 된장을 담그면 봄이 왔음을 알았고 여름장마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닮아 나도 소낙비라도 내리면 시키지 않아도 장독뚜껑부터 닫았다. 부산하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몸짓에서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 순환은 언제나 정확했고 예외가 없었다. 살고 죽는 일이 평범한 사람만이 느끼는 행복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자식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남동생 겨레의 짧은 생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야 죽게 된다는 그 정한 이치에 벗어난 사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도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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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외갓집으로 간다. 빨리 타.”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겨레는 엄마의 손에 끌려 용달차 뒤 칸에 올라탔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겨레가 부러웠다. 볼에 스치는 찬바람은 두꺼운 이불 사이를 헤치고 졸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귓전에 울리는 바람소리는 너무 요란했고 덜컹덜컹 용달차가 옆구리를 차며 달리는 통에 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람은 심술 맞게 이불을 펄럭대며 지나갔다. 아예 잠자기를 포기한 나는 조각이불을 들추고 쌩쌩 지나는 거리풍경을 눈으로 훑었다. 어두운 하늘 끝이 푸르스름하게 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앙상하게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두 눈을 때릴 듯 휙휙 스쳤다. 멋대가리 없는 회색 시멘트벽은 아주 길게 이어졌고 뜨문뜨문 지붕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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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직도 멀었어?”

“거진 다와 가.”


이상하게도 외갓집 가는 길이 처음은 아닌데 올 때마다 새롭고 낯설다.

우리 집에 같이 살던 늙은 여자가 나더러 외가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도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늙은 여자가 왜 나와 함께 외가에 가자고 하는지 앞뒤 전후를 따져 생각하기엔 내게 외갓집은 그저 즐거운 설렘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외갓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나는 자신 있었다. 그전에도 외할아버지를 따라 몇 번씩 와봤었기에 쉽게 외갓집을 찾을 줄 알았었다. 외갓집에 갔던 기억 뿐 아니라 주소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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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번동 산 1번지.

주소에 적힌 대로 녹번동에서 내리면 되는 일이다. 나는 버스운전사 아저씨에게 녹번동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지나칠 까봐 녹번동이 가까이 오면 미리 알려달라며 몇 번씩 당부했다. 맘 좋은 아저씨는 녹번동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영 낯설었다. 버스 계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내 기억 속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상하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녹번동 산 1번지. 엄마가 외가에 편지를 부칠 때 편지 겉면에 그렇게 썼었다. ‘가나다라’를 뗀 내가 엄마가 쓴 한글을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외갓집에 가는 걸 제일 좋아했던 나는 외갓집 모습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눈을 감으면 외갓집 들어가는 입구부터 훤히 펼쳐졌다. 큰 개천을 끼고 걷다보면 징검돌이 나오고 그 징검돌을 건너 마당이 넓은 집을 끼고 약간 위로 언덕진 곳으로 올라가면 벽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게 된다. 그 집이 바로 ‘길세진’이라는 외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걸려있는 외갓집이다.

녹번동에서 내리긴 했는데……, 개천이 보여야 하는데 개천은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장소를 몇 바퀴나 돌고 돌았다. 짜증이 났는지 늙은 여자는 내게 신경질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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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여기가 분명 니네 할머니가 사는 동네가 맞어?”

“네.”

“확실해? 저기……, 여보세요. 말 좀 물읍시다. 여기 독박골이라는 곳이 어디인가요?”

“독박골?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데요.”


늙은 여자는 한복자락을 잡아당기며 구멍가게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나도 같은 장소를 몇 바퀴나 돌았더니 현기증이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는 미안함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었다. 늙은 여자는 구슬이 듬성듬성 빠진 구슬 백을 열었다.


‘혹시, 날씨가 덥다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려는 건가?’


하지만 늙은 여자가 핸드백에서 꺼낸 건 돈이 아니라 손수건이었다. 그녀는 자글자글한 손수건을 꺼내 토닥토닥 얼굴에 솟아난 땀을 닦았다. 이미 얼룩덜룩 땀과 화장품으로 뭉쳐진 얼굴은 볼썽사나웠다.


“주소가 분명 녹번동 산 1번지라며? 근데 왜 독박골은 어디 있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낸들 알겠는가. 어른들끼리만 통하는 명칭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든 길에는 샛길이 있고 동네사람들만 들락거리는 갓길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에도 곁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녹번동 산 1번지는 틀림없는 외갓집주소다.

맨날 엄마가 ‘독박골’이라고 골백번도 더 말했는데 내가 그 이름을 헷갈릴 리가 없다. 근데 버스에서 내린 곳은 녹번동은 맞는 데 산 1번지도 없고 독박골도 없으니 나도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다. 자신만만했지만 어린 나 혼자서 외갓집을 찾는 건 역시나 무리였나 보다.

나는 늙은 여자와 온종일 헤매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그날 내가 외가댁에 늙은 여자를 안내했더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 나 오늘 외갓집에 갔는데 녹번동에서 내렸는데 할머니 집 못 찾았어.

“뭐라구? 거기가 어디라고 니가 찾아나서? 외갓집 주소는 녹번동이지만 불광동 정류장에서 내려야지.”

“아! 그랬어? 그걸 모르고 녹번동에서 엉뚱하게 내렸으니…….”

“근데 거길 너 혼자 갔어?”

“아니. 저, 아줌마랑.”

“뭐라고? 저 제 정신이니? 그래도 못 찾았기에 망정이지. 니가 그 계숙이라는 여자를 데리고 외갓집에 갔더라면 어쩔 뻔했니.”


늙은 여자를 집에 들인 것도 아버지였고 그 여자를 우리 집에서 내쫓은 것도 아버지였다. 나는 오로지 외갓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눈치 없이 늙은 여자가 시키는 대로 길을 나섰던 것이다. 엄마말대로 그 늙은 여자를 외갓집에 친절하게 안내했다면 나는 엄마와 생이별을 하고 늙은 새엄마랑 살 뻔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외갓집을 찾아가 담판이라도 짓겠다고 악을 쓰던 늙은 여자의 면상에 냅다 재떨이를 내던졌다. 이마를 감싸 쥔 늙은 여자는 아구구구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이마에선 선지처럼 검붉은 피가 뚝뚝 흘렀다. 비명소리를 듣고 몰려온 옆방사람들은 피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수건을 갖고 오고 소독약을 찾아 내밀었다. 동네사람들의 도움으로 응급처치를 하게 된 늙은 여자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날 이후로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루였나, 이틀이었나. 아버지가 다시 집에 들어왔던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그만하게 합의가 됐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슈.”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정말 고마우세요. 주인아저씨 도움이 아니었다면 어찌됐을지…….”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내 친한 친구가 용산 경찰서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그런데 부인 있고 자식도 있는 젊디젊은 양반이 어찌 그렇게 늙은 여자와 붙어 먹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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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책상다리 사이로 두 손을 찔러 박은 채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내가 벌을 받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아버지는 그런 자세로 앉아있었다. 입을 다문 아버지의 표정은 또 다시 재떨이를 집어 들 것처럼 무서워보였다. 겁이 난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진심으로 뉘우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상처 난 자존심은 뉘우치기는커녕 고집을 부리기 마련이다. 내 예감대로 엄마와 아버지는 이삿짐을 쌌다. 그리고 주인집 아저씨와 옆방에 세 들어 살던 이웃과 마지막 인사도 없이 새벽 일찍 용달차에 이삿짐을 꾸려 외가가 있는 독박골로 향했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다보니 구름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나는 창문너머로 구름을 바라보다 비행기 좌석 깊숙이 허리를 집어넣었다. 좁고 불편한 기억들이 꼬리뼈에서부터 갑갑하게 올라왔다.

증오와 미움으로 뒤범벅이 되기 전의 청랑한 시간들, 유리 화병에 담아놓은 색돌처럼 환한 미소를 감출 수 없는 한때이기도 했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희미한 얼굴들이 가닥가닥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늘 동생을 업고 있던 희옥이와 병찬이가 상상 속에서 어른으로 자랐다. 모두들 어떻게 변했을까? 이젠 다들 성인이 되었으니 길에서 만나도 서로 몰라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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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죄하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뱀을 통해 인류가 저주를 받았다지만 뱀 바위에 얹혀살던 사람들은 죄가 뭔지도 몰랐다. 죄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신의 징계가 내렸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징벌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진작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독박골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평생토록 가난을 끌어안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제단을 쌓았어야 옳았다. 눈을 감았다. 지난 회상은 언제나 그 부분에서 끊겼다.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6화 서울, 과거로 돌아가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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