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놀라웠다. 서울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변화를 인정하지만 막상 변화 앞에 서니 당황스러웠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출구로 나오자 놀라움에 그만 멈춰서고 말았다. 갈 곳을 모르는 미아처럼, 두리번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찾아보았다. 만약 길이 엇갈려 못 만나게 되면 어쩌나? 순간 천루한 초조감이 목덜미를 눌렀다. 이 기분. 갈 곳이 없을 다가오는 두려움,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 그곳이 어떤 험악한 곳이라고 해도 반가울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안개처럼 가슴에 내려앉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갈 곳이 없었지만 돌아갈 곳도 없었다. 아무 버스나 탔다. 그리고 시내 한 복판에 내렸다. 화려하고 번잡했다. 하지만 불량해보였다.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탔다. 내리고 또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갈아타기를 몇 번째. 그것도 지쳤다. 날은 어둡고 버스도 곧 끊길 거라는 생각에 어느 낯선 도시에 내렸다. 나지막한 집들이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이따금 한가한 도로를 군용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듬성듬성한 건물만큼 사람들이 드문드문 길을 걸어 다녔다. 시장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오고갔다. 전등 아래 생선은 물빛이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국밥이 설설 끓는 커다란 솥은 곁에 서서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불러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쓰린 배를 움켜지고 고불고불 사람하나 겨우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그곳은 별천지처럼 환했다. 색색깔의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신부처럼 웃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화려한 한복 색에 홀려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웅크린 나를 내쫓지 않고 먹을 것을 주었다.
“야, 너 집 나왔냐?”
“…….”
“근데 네 손에 들린 건 뭐냐?”
“상장이요.”
“상장? 누가 탄 건데.”
“아버지…….”
“아버지가 훌륭하신가보다. 근데 왜 집은 나왔냐?”
“…….”
“웬만하면 돌아가라. 이곳은 너같이 어린 애가 올 곳이 못돼.”
“그냥 제 발로 걸어들어 온 건데 받아들여.”
살 곳이 못된다던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남들은 숨어서 하는 일들을 그들은 드러내놓고 했을 뿐이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훌렁훌렁 한복을 벗어댔다. 나도 그들처럼 벗고 싶었다. 겉옷을. 죄의식을. 피해의식들을.
“너, 현행범과 일반인의 차이가 뭔지 알아? 바보, 그것도 몰라? 그건 범행현장을 들켰냐, 안 들켰냐야. 들키면 감옥가고 안 들키면 거룩하게 사는 거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살지만 모두다 감옥에 가는 건 아니야. 왜냐? 안 들켰으니까. 재수 없이 들키는 놈들만 범인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너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
평생을 피해의식 속에 살아왔던 나였다. 행여나 들킬까봐 아예 한국을 떠났는데 30년 만에 과거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앤 플린씨죠? 이쪽으로 오시지요.”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내가 끌고 있는 카트를 넘겨받아 끌었다.
“안 오실까봐 무지 걱정했어요.”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어야 했는데. 우선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따 오후에는 정부 인사들과 간담회와 기자회견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내일은 문광부 장관과 오찬을 하셔야 하구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군요. 일정은 조금 있다가 말씀해주세요”
“약을 좀 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조금 어색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기자회견에 준비할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의례적인 질문들일 테니 그리 신경 안 쓰셔도 되지만, 앞으로 준비할 일에 대해 질문을 할 겁니다.”
“실은, 서울의 어느 장소를 찍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거든요.”
“그럼, 비밀이라고 말씀하시면 되겠네요.”
“후, 그렇군요.”
문광부에서 나를 위해 정해놓은 숙소는 홍은동 전철 역 부근 스위스그랜드호텔이었다.
‘숙소를 불광동부근에 마련해달라고 부탁할 걸…….’
왜?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곳에 가야할 이유가 없다. 나는 조앤 플린이고, 세계적인 사진작가이며,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나와 있는 거라고.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낼 이유도 없을뿐더러 결코 드러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뭔가. 생각을 집중할 수도, 안정을 취할 수도 없는 이 불안함은. 불에 달궈진 돌멩이를 밟고 쩔쩔매는 기분이다. 오른발, 왼발 뜨거움을 옮겨보지만 열기는 몸 안에서 화끈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내 머릿속은 온통 그 물음뿐이다. 조앤 플린, 수잔 플린, 아니면 조앤 강. 무슨 이름이 됐든, 정말로 나는 누구인가.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과거에 내가 어떤 이력을 지녔는지도 모르면서 플래시를 터트리고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도시의 순례자’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인권사각지대를 사진에 담는 사진작가로 유명한데 유난히 그런 주제를 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리는 살다보면 타인의 고통에 개입해야 되느냐 외면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순간에도 폭력적이고 잔혹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있지만 대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가기 마련인데 사진은……, 그런 고통을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문지기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진작가는 비도덕적이고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지켜볼 때가 더 많으니까요. 방관자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뜻밖의 반응에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내가 혹시 실수했나? 저들은 내게 어떤 말을 듣기를 원했던가.
“그럼, 사진은 남들에게 알리기 위한 의도 하에 찍었다고 볼 수 있나요?”
“엄밀히 따지면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럼, 선생님의 작품 중에 ‘얻어맞은 어느 창녀의 이야기’는 사회에 알리기 위해 일부러 계산에 넣고 찍은 사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연히 찍게 되었고 우연히 사진전에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찍게 된 배경을 좀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배경을 설명하지 못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 사진이 연출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 부분은 어떻게 설명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연……출이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사람들은 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난 그 순간 깨달았다. 마침내 내가 두려워했던 일과 직면했음을.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으로 추켜올렸다. 저들은 지금 내 모습에서 과거에 X축이었냐, Y축이었냐를 끄집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작품에는 배경이 작용하는 건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에겐 문화가 그 배경이 될 수 있겠고 어떤 사람에겐 종교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이 일관되게 표현될 때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만 가지고 작품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그건 작가의 의도를 축소시키는 겁니다. 물론 제 작품에도 공간적인 배경과 시간적인 호흡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서 밝히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퓰리처상의 권위를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그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제 작품이 연출됐다고 여겨지면 직접 주최 측에 저의 수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일이며 대답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의 기자회견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보여줄게 없습니다. 저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제가 찍은 사진을 보십시오. 거기에 저의 언어들이 있습니다.”
더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비겁하지만 조앤 플린이라는 가면을 지금 벗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자들은 술렁거렸다. 그리곤 일제히 방금 질문한 기자에게 비난의 야유를 보냈다.
“뭐 하러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파장을 만들어!”
내빈석에 앉아있던 초청 인사들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결례를 범했음을 인정하는지 모두들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그들 중 유독 한 사람만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을까. 수행원만 나를 따라왔을 뿐 아무도 회견장을 떠나는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다들 싱겁게 끝나버린 회견장을 떠난 후에도 어떤 남자가 프론트에서 내가 묵고 있는 방 호수를 물어봤다는 걸 내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었다 해도 난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날 긴장되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아침에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호는 제7화 요셉이 업은 마리아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