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서편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오후, 나는 노만디 애버뉴에 차를 세웠다. 다울정에 가기 위해서다. 한국에서야 흔하디 흔한 게 정자겠지만. 미국 땅덩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단청색의 다울정은 분명 특별한 상징물이다.
특별하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일부러 찾을 것까진 없다고 여겼던 다울정을 방문했다.
허탈함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닿은 다울정. 올림픽 가를 지날 때마다 힐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홀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미안했다. 한국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나는 한국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는 것같아서. 아니, 한국을 위한다고 한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핑계를 대며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허술해도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
청와대의 몰락은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처럼 막장의 3종 세트를 골고루 갖춘 엉터리 같은 세상의 완결편이었다. 노인들에게 한 달에 20만 원씩 준다는 말에 박근혜를 찍었다던 친정엄마까지 원망스러웠다.
판단력 없는 노인들에게 20만 원이라는 미끼를 던져주고는 박근혜 정부는 재단을 세워 고래의 숨구멍처럼 돈을 빨아들였던 것이다. 눈먼 돈이라는 게 맞는 말같다. 돈에 눈이 달렸다면 형편없는 위인의 손바닥에서 놀아나진 않았을 텐데. 올림픽 가에 다울정이 세워졌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 사이에. 그까짓 게 있으면 있었지, 나하고 뭔 상관이냐고 홀대하던 그 사이에. 내가 신경을 끊고 나 몰라라 했던 그 만큼의 크기로 한국정부는 부패해갔다.
그 모든 부정부패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울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LA시에서 허가를 내준 한국 건축물이 제대로 잘 꾸며졌는지. 직접 찾아와서 둘러보는 게 도리인 것같아 시간을 냈다.
정자 안에는 어르신 한 분이 앉아있었다. 정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마당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자그마한 공간에 사람을 기다리는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다. 두 개의 돌하르방 앙증맞다. 한 켠에 청소 도구가 있는 걸 보니 정원이 정갈한 이유를 알 것같다.
이상한 일이다. 힘은 거창한데서 솟아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환대받지 못하는 듯 보이는 다울정이 버틸 수 있는 힘을 보았다. 정원 한 가운데 세워진 기다란 석판. 그 석판에는 다울정 건립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호들갑이지만 웃기는 소리다. 한국인은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멘붕 상태라고 해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100년 전 그때만 하겠는가. 비록 제대로 준비된 지도자를 만나진 못 했어도 곧 이 절망을 추스르고 일어설 것이다.
다울정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건 두 개의 앙증맞은 돌하르방 때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