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는 부를 수 없는

5월은 내게 참회의 달이다

by 권소희

독박골에 교회가 세워졌다. 천막을 두르고 가마니를 깔았던 교회는 산으로 쏘다니던 독박골 아이들에게 소망이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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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설교를 들으면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성공’이라는 작은 꿈을 가슴에 한 개씩 품을 수가 있었다. 성공학에 관한 책을 따로 읽지 않아도 자연스레 꿈을 꾸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조명탄처럼 남루한 마음 가운데서 환하게 불을 밝혀주었다.


믿음이라는 게 뭔지 모를 나이에 접해 본 기도라는 것은 미래라는 시간에 어깨를 걸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동네아이들은 틈만 나면 공터 대신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기도실에 모였다. 모두 간절하게 하나님께 각자의 소망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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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간절함이 있었다.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가 하루 속이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는 기도였다.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없는 믿음이 좋은 딸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만 바뀌면 더 이상 교회 가는 엄마에게 손찌검하는 모습은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면 성경책이 찢겨져 마당에 나뒹구는 참담함은 그날로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도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기도실이 떠나가라고 부르짖었던 그 절실함 뒤에 숨겨져 있던 본심을. 그 기도가 실상은 아버지의 영혼을 사람해서가 아닌 내 편의를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믿음이 좋아 보이는 기도의 실체가 실상은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아버지만 바뀌면 아니, 나를 위해 아버지는 바뀌어야만 했다. 나를 위해.


그런 가식적인 기도에 응답이 있을 리 없었다.


아버지는 향로봉 위에 올려 있는 바위덩어리 마냥 단단하기만 했다. 나는 지쳐갔다. 변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에 좌절하고 미워하며 끊임없이 아버지를 원망했다.


5월, 아버지는 65세의 나이를 채 끝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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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나의 이기심을 위해 기도라는 형식을 빌렸다는 것을.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은 욕망에 지나지 않았던 가식적인 믿음의 본체를 말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은 내게 참회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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