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뿌리 끝에 있는 할머니의 목소리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우연히 도움을 주던 선한 사람들,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한 장면, 유리처럼 가슴 속 깊숙이 파고들던 시 한 구절, 뼛속에 수직으로 떨어지던 한 마디의 충고, 그리고 실수라고 얼버무려도 용납이 되던 청춘은 내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나를 지배해왔다.
아니, 오래도록 내 의식에 뿌리를 내라고 지금의 나를 지배해왔던 것은 어린 시절의 그 무엇 때문이었다.
그 무엇, 생각의 주어와 서술어가 정리되지 않던 그 시절에 나는 외할머니와 톱니처럼 맞물려있었다.
영화구경을 좋아했고 도시락을 싸서 경복궁으로 나들이를 갔던 외할머니는 풍류를 알던 멋장이였다. 외출할 때도 늘 콧등에 분가루를 뽀얗게 발랐다. 살풋한 분내를 풍겼던 할머니는 무채색 옷은 질색을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치명적인 고민이 있었는데 흰 머리카락이었다. 할머니는 염색약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염색약을 사용할 수 없던 할머니는 흰 머리카락 뽑기를 생각해낸 것이다. 흰 머리카락만 뽑으면 검은 머리카락만 남을 거라는 논리는 그럴 듯했다.
나는 외할머니 머릿속을 헤집으며 족집게로 흰 머리카락을 뽑아 까만 옷솔 위에 한 올씩 올려놓았다. 모공에 두 개씩 겹쳐있는 흰머리를 발견할 때는 금이라도 캔 것 마냥 베개를 베고 누워계신 외할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실수로 흰 머리카락이 아닌 뽑지 말아야할 검은 머리카락을 뽑게 되면 슬그머니 옷솔 위에 올려놓았다. 할머니에게 검은 머리는 금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가 잘 맞는 족집게를 사기 위해 백화점을 따라 갔던 기억도 때문에 지금도 족집게를 보면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머리뽑기가 즐거울 수만은 없다. 동네 아이들은 밖에서 놀고 있는데 구부리고 앉아서 장시간 손에 머릿기름을 묻히는 흰머리 뽑기는 정말로 고욕이었다.
꾀를 부리는 나를 달래기 위해 할머니는 10원짜리 동전을 주어주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나는 억지로 흰 머리카락 사냥을 나섰다.
할머니는 내가 오래도록 흰머리를 뽑도록 이야기를 보태고 늘려서 꾸며댔다. 심청전이며 장화홍련전은 몇 번씩 우려먹은 이야기다. 한글을 깨우쳐 일찍이 신소설을 많이 읽었던 할머니는 남편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기구한 여성의 운명에서부터 일본 유학을 다녀온 신식 여성의 거친 일생까지 내 말랑한 의식에 차곡차곡 뿌려 놓았다. 그러다 이야기 밑천이 떨어지면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 거리를 위해 새로 책을 읽으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흰머리 뽑기는 끝이 났다. 가끔 외가에 가서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시선을 딴 데로 돌려야 했다. 할머니의 머리는 휑하니 두피가 드러나보였다. 결국 할머니는 가발을 택하셨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외출을 하시는 할머니는 여전히 멋쟁이 포스를 풍겼다.
들창을 타고 내리쬐던 햇빛 아래 쪼그리고 앉아 흰 머리를 뽑던 나에게 조근조근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할머니의 음성은 무의식의 페달을 밟아주던 풍금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