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대문 집을 찾습니다

도로명칭이 바뀌어 초록대문 집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by 권소희

우리 집 약도는 마치 만화에 등장하는 보물섬 지도처럼 엉성했다. 종이에 사각형 두 개와 직선 하나만 그리면 된다. 두 개의 사각형 중에 하나는 십자가를 그리고 다른 사각형에는‘초록대문 집’이라고 써서 넣으면 약도가 완성됐다. 길게 그린 수직선 밑에 '독박골 고개'라고 써서 넣으면 ‘고개 아래 동산교회 옆에 있는 살고 있는 우리 집’ 약도다. 동산교회, 고개, 그리고 초록대문 이라는 표시만으로 부족하다면 담배 가게를 하나 더 적으면 된다. 나랑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선숙이네 담배 가게가 바로 우리 집과 마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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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우습게 볼 거리는 아니었다. 수박이라도 한 통 들고 올라치면 점점 어깨죽지까 빠질 정도로 멀다. 중간에 수박을 깨버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시장을 간다고 하면 냉큼 따라나섰다. 그래야 대조시장에서 파는 납작 만두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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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가야 먹을 것을 얻어 먹을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에 '맹호'라고 이름붙인 셰퍼드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눈도 못 떼던 강아지였을 때는 똥개인지 셰퍼드인지 구분이 안 가던 강아지가 털갈이를 몇 번 하더니 잘 생긴 견공으로 변해갔다. 마당이라고 해봐야 장독 2개를 묻으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작은 집에 그 큰 개는 도통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먹성이 좋은 그 녀석의 양식을 위해 겨우 내내 신문지를 챙겨 시장으로 갔다. 고개를 지나 불광초등학교 건널목을 건너 대조시장안에 있는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신문 몇 장을 내밀고 토막난 생선대가리와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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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얻어온 생선토막에 밥을 넣고 함께 끓여 개밥을 만들었다. 개밥을 끓이면 비린내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냄새가 풍기자 맹호는 배고프다고 낑낑 거려 뜨거운 개밥을 식힐 시간도 없이 개밥그릇에 부어줘야 했다. 맹호는 날카로운 이빨로 생선대가리를 덥석 물어 저걱저걱 소리를 내며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 춥다고 시장에 가기 싫은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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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던 어느 즈음에 맹호는 경찰서로 입양을 보내야 했다. 좁은 마당은 더 이상 맹렬하게 내갈기는 녀석의 오줌이 감당이 되질 않는지 꺼멓게 썩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집에 놓였던 자리에 라일락 나무를 심었다. 계절을 지날 때마다 나무 기둥이 굵어지고 지푸라기 몇 가닥으로 처매주었던 장미는 겨우 내내 얼어 죽지도 않고 되살아나서 초록대문을 빨갛게 덮었다. 아마도 맹호가 내갈기던 오줌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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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을 지나 가파른 고갯길 오고가며 학교를 다니던 우리들도 그것들만큼 커져갔다.

개천이 복개 된 자리에 136번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던 즈음이었나. 학교와 시장, 버스정류장으로 흩어지기까지 무한정 걸리던 거리가 단축됐다. 버스가 다니고 지하철 공사가 시작됐다. 구기터널이 뚫리면서 동네가 복잡해졌다. 빈약한 그림으로는 포도밭 너머에 살던 친구네도 찾을 수 없고, 전봇대 두 개 지나면 보인다던 선미미용실도 분간할 수 없게 됐다 . 도로명칭도 바뀌어 예전의 주소는 없다. 재개발이 되어서 우리가 살던 불광동 1-217번지 초록대문 집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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