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푸른 희망을 찾다

안개는 거인의 옷자락처럼 세상을 어디론가 감춰버렸다

by 권소희

안개가 깔렸다. 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소리 없이 안개에게 점령당한 도로는 미지의 거리다. 자물쇠 가게도 사라졌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햄버거 가게 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전날까지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던 도로 표지판은 물론 이정표도 사라져버렸다. 미아처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핸들을 꽉 잡고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떴다. 그것도 모자라 허리를 고추 세워 똑바로 앉았지만 벌써 내 마음은 허둥대고 있었다.



안개는 거인의 옷자락처럼 세상을 어디론가 감춰버렸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저 너머에 뭔가가 있긴 한데. 안개 너머로 뿌옇게 번진 불빛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신호등 불빛이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요술에 걸린 것 마냥 앞이 보이지 않아 우회전해야 하는 길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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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다가가야 비로소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안개는 마치 나의 인생을 닮은 듯하다. 앞날을 가늠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던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무지함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는 떠올리기도 낯부끄럽다. 그중에 제일 속상한 일은 아마도 사람을 몰라보는 일일 것이다.



몰라보는 게 어디 사람뿐인가.



'이 길이 맞는 건가? 혹시 잘못 들어선 길은 아니겠지.'



수없이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물어도 인생의 주인인 나는 여전히 내 삶에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잘못 들어선 길은 되돌아 나오면 되지만 인생의 실수는 자신감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그럴듯한 무게가 있고 어른스럽게 진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어도 거대한 안개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매순간 당혹스럽기만 하다.



아직도 삶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 나는 얼마나 더 방황하고 주저해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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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안다. 거리를 잴 수 없는 저편에 분명하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나이가 장애가 된다면 나이대신에 지혜를 구하리라. 뒤뚱거리기를 반복하는 세 살배기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 도전이 필요하다면 히말라야 등반에 오르다 빙사한 산악인의 혼령을 부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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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가려 놓쳐버린 수많은 실수들로 좌절하진 말자.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길을 잃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리라.


새벽에 마주친 짙은 안개는 푸른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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