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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Sep 29. 2015

베트남 소년 닉의 죽음

Forgive Us

닉이 죽었데. 언제? 어떻게? 라고 물었지만 딸아이는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닉 누엔, 올해 26세인 그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베트남인 2세다.

 딸아이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그 아이가 우리 아파트를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각각 뿔뿔이 흩어진지 3년이나 흐른 어느 날이었다. 옆집 사는 이웃으로부터 하루 종일 어떤 남자가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서성댔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도 우리는 그 아이가 닉인줄 몰랐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잠을 자다 매니저에게 걸리자 아이는 냅다 달아났고 두 개의 가방만 덩그러니 우리가 차를 세우는 자리에 놓여있었다. 그 아이가 학교 다닐 때 싸구려 마약을 하게 됐고 졸업 후에는 떠돌아다니며 친구들 집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빨래를 하기위해 왔다고 둘러대는 그 아이의 거짓말을 못이기는 척 믿어주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Forgive us.(용서해줘)'라고 적고 20달러를 넣은 카드를 가방 안에 넣었다. 떠돌이의 가방은 의외로 가지런했다. 두 개의 가방 안에는 속옷과 겉옷, 세면도구와 CD플레이어가 나뉘어져 있었다. 한 달가량이 지난 후 그 가방들은 사라졌고 우리도 그 아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게 됐다.

 일 년 후, 길게 자란 머리를 너풀거리며 도로를 걸어가는 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딸은 용케도 노숙자가 되어 버린 닉을 한 눈에 알아봤다. 회복하기 힘든 운명의 길에 들어선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연민은 무력했다. 동정마저도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기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그의 죽음이 뜬소문처럼 내게 전해진 건 유로터널에 1500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보도가 실린 직후였다. 해변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아이로 인권에 대해 비난과 우려가 쏟아지는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닉의 식구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떻게 입국을 했던 어쨌거나 미국에 정착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닉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혹시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보트피플’로 바다 위에 떠다녀야 했던 베트남 전쟁의 슬픈 역사를 알지 못했던 건 아닐까.

 공산주의를 싫어하던 월남군 장교도 존경한다던 호치민에 깊은 관심이 있던 나는 베트남 사람인 그 아이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짧았던 그의 생이 불쌍하고 이혼을 했다던 그의 부모의 무너진 인생도 안타까웠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테지만 마약에 손을 댄 그의 행동 뒤에 일그러진 어른들의 삶이 원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닉의 죽음은 이민가정의 어둔 그늘이었다. 난민이든 합법적인 이민이든. 미국에서 살아도 삶의 질은 자신의 그릇만큼 누리게 된다. 너도나도 오고 싶어 하는 나라지만 미국이라서 더 살기 힘들다.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자녀들처럼 부모들도 사는 게 불안하고 힘겹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원망스러워도 그것밖엔 안 되는 어른들을 용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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